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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지/전라도

병풍산 산행기

by 장끼와 까투리 2009. 4. 9.

 

 

 

오늘도 여느 토요일과 다름없이 

산내음님들과 병풍산을 오르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동지가 지난 후 105일째인 한식날과 청명, 식목일 전이라 그런지 산행예약 인원이 조촐하다.

예약하고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님들이 있어 7시 10분까지 기다렸지만

19명이다.

두자리를 차지하고 널찍하게 앉아 몸은 편했지만, 차안이 썰렁하니 왠지 허전하다.

그렇다고 기 죽을 산내음이 아니지!

묵직한 저음의 금송회장님 인사 말씀과 다비대장님의 꼼꼼한 산행지 설명과

새로 오신 님들의 소개가 이어지고 

예쁜이 들꽃님의 따끈한 커피 대접으로

다소 쌀랑한 아침 냉기가 감돌던 차안이 훈훈해졌다.

 인자무적님의 재담에 한량팬더님의 쾌활한 웃음이 또 다시 차안을 후끈하게 달군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서로서로 친근한 유대를 맺은 우리는

설레는 맘으로 송정 대방저수지 근처에 도착했다.

화창한 봄 볕 아래 싱그럽게 초록을 뽐내는 대나무 숲 아래서 가벼운 체조를 했다.

 

 

다비 대장님이 저수지 뚝방에서 사진을 찍자고 아래 쪽으로 내려 오라고 하신다.

ㅎ 산행할 때 뒤로 오라고 하면 맛난 것 먹으라는 것 외에는 절대로 후진하기 싫은데...

그래도 떼거지(ㅎ) 사진을 찍자니 산내음 누가 마다하랴!

뚝방으로 오르며 다들 한마디씩 우스개 소리를 한다.

아마도 예전에 뚝방 아래서 뭔가 은밀한 짓들을 많이 했었나보다.ㅎㅎㅎ

 

 단체사진과 독사진, 삼삼오오 무더기 사진을 찍은 후

병풍처럼 둘러쳐진 병풍산을 향해 출발!

올려다 본 푸른 하늘은 내 몸을 깃털처럼 들어 올릴듯이 깊고 넓다.

말간 햇살과 상큼한 봄 내음, 속이 보일듯 맑은 저수지 , 공활한 하늘때문에

내 마음이 한껏 부푼 때문이리라.

 

 

올려다 본 봉우리가 만만치 않아서 걱정이다.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 스스로 최면을 걸고자

최근 가장 오르막이 힘들었던 산인 가리왕산보다 더 힘드냐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본다.

ㅎㅎㅎ 뻔한 대답.

아무튼 가리왕산보다는 덜 힘든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다른 날 같으면 2알 먹던 약을 오늘은 3알 먹었으니, 잘 올라 갈 수 있으리라.....

금송회장님과 도올님이 발을 맞춰주니, 꼴찌로 가도 걱정이 없다. ㅎㅎㅎ

 

 선두는 휴식을 취하나보다...

오랜만에 무적님의 하모니카 연주 모습도 보이고

늘보님이 마련해 준 한량팬더님표 생명수도 한 바가지씩 마시고

들꽃님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전날 늦도록 퍼 마신 다비대장님은 아직도 비몽사몽인 듯.ㅎㅎㅎ 

 

 

사진을 찍으면서 잠시 휴식도 취하고, 지나 온 곳과 가야 할 곳도 살펴보고

자연이 만든 형상이지만 마치 인공물인 듯 묘한 형상의 바위들도 감상하고

선두가 저렇게 여유를 부리는 시간에도 난 그저 땀 뻘뻘 흘리며 헥헥거리며 오르막을 올랐다.

그래봤자 ㅎㅎㅎ 같이 버스타고 집에 갈긴데...

산에 가면 욕심은 절로 비워진다. ㅎㅎㅎ

 

 병풍산의 첫 봉우리.

천자봉.

천자라 함은 천제(天帝)의 아들,

즉 하늘의 뜻을 받아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군주 국가의 최고 통치자를 이르며. 우리나라에서는 임금 또는 왕(王)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병풍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바로 천자봉인가보다.

휴~~~

지금부터는 능선을 따라 룰루랄라 가볍게 갈 수 있겠구나...   

 

천자봉을 지나 부지런히 선두를 따라가니

선두는  점심식사를 거의 끝내는 중이었다.

어서 오라며 내 주는 밥상에 점심을 펼쳐 놓는다.

회장님의 푸짐한 야채 쌈에 이미 식사를 마친 님들도 침을 흘리며 덤벼든다. ㅎㅎㅎ

유쾌하게 식사를 마치니, 과일, 커피 등의 후식이 줄줄이 대기한다.

산내음은 이렇게 어느 경우라도 배려하고 기다리고 즐거워한다.

이런 분위기가 바로 산내음을 명품 산악회로 만든다.

조금 귀찮고, 조바심이 나고, 불편하고, 자제해야 하고, 덜 세련된 것 같아도

산내음만이 가지는 독특한 향기가 있다.

 

점심도 먹고, 과일과 커피로 우아하게 후식도 챙겨 먹었으니, 

 이제부터는 후미를 탈출해야지...

앞서 출발하는 대장님을 따라 부지런히 짐을 꾸려 따라나선다.

뒤 돌아보니 회장님과 도올님이 아직도 출발을 안 하신다.

ㅎㅎㅎ 아마도 이삭줍기를 하실 모양이다.

화장 고치러 간 사람이라도 있나부다.

 

부지런히 바위 능선을 따라 걷다보니, 철 계단이 보인다.

별로 가파르지 않아서 지난 번 신시도에서처럼 엉금엉금 기진 않았지만

그래도 남들처럼 빨리 오를 수가 없다.

아마 장끼님과 함께 왔다면 오만 엄살을 다 떨었을텐데...ㅎㅎㅎ

그저 발끝과 계단만 보고 오르다가 사진을 찍어준다는 말에 뒤 돌아보는 여유까지.

앞 뒤로 함께 가는 님들이 있어서 참 좋다.  

 

철 계단을 올라가니 묘하게 생긴 바위가 보인다.

배경 삼아 얼른 사진도 찍고, 높은 곳에 올라 가 멀리 바라보며

부릅뜨고 발 밑만을 살피느라 늘 피곤했던 눈 가느스름 편히 뜨고

아집으로 꼭꼭 겹싸인 답답한 가슴도 느슨하게 풀어 헤치고 

온 몸을 바람에 내 맡겨 본다. 

 

 

이쁜 바위들로 이어진 능선 길이 지난 번에 다녀 온 덕룡산과 비슷하다.

산은 비슷한데...

덕룡산 멋진 바위 능선을  걸으며 행복함으로 웃고 담소하며 사진도 찍던

님들과 함께 할 수가 없다니...

 

고려말 야은 길재 선생의 시조가 생각난다.

"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누군가는 이런 말도 했다.



" 꽃도 삶도 피어있을 때 아름답다. 열흘이면 스러질 벚꽃엔 환호하면서도 
언제 끝맺을지 모르는 인생에서 우리는 한 번이라도 열광했던 적이 있던가..."

 

 

드디어 병풍산 정상에 도착했다.

울 산내음 님들이 좋아하는 떼거지 사진도 찍고

정상석 생긴 모습이 묘하다며  다들 개성대로 기념 사진을 찍는다.

사진만 찍고 그냥 갈 우리 산내음이 아니지...ㅎㅎㅎ

요새 산내음에서 뜨는 카수 한량팬더님의 <바다>를 청해 들으며 잠시 숨을 고른다.

 

어두운 밤바다에 바람이 불면
저 멀리 한바다에

불빛이 가물거린다
아무도 없어라 텅빈 이 바닷가
물결은 사납게 출렁거리는데
바람아 쳐라 물결아 일어라
내 작은 조각배 띄워 볼란다


 

시원하게 탁 트인 산 정상에서 거침없이 높이 치솟는 목소리로 노래를 들으니

내 가슴 속마저 후련하다. 

 

 

 

누군가는 산 정상에 서서도 더 높은 곳을 바랬던 것인가?

서슬같은 이상이야 높을 수록 좋겠지만,

추한 인간의 욕심마저 하늘을 찔러서야...

자연은 있는 그대로가 아름다움일진대. 

 

투구봉을 목전에 두고, 먼 길 떠나며 신발끈을 다시 묶듯이

우리는 넓적한 바위에 빙 둘러 앉아 휴식을 취했다.

적당한 피로에 달콤한 쉼에 멋진 하모니카 연주...

산내음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이며 행복이다.

하모니카 반주에 흥얼거리며 노래도 불러 보고, 느긋하게 길게 누워 먼 곳도 바라보고

한 모금 물로 목도 축이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멍하니 비워내는 이 시간.

우리가 힘들게 산을 오른 후에 느끼는 즐거움이리라.

 

드디어 투구봉에 당도!

왜 투구봉이라고 했을까?

아무리 둘러봐도 투구처럼 생긴 것은 안 보인다.

다만 정상석만이 투구처럼 앙증맞게 생겼다.

정상석이 작아 빙 둘러 앉아서 사진을 찍어본다.

그런데... 뒤 따라와야 할 회장님과 도올님이  아직도 보이질 않는다.

ㅎ 대장님이 그만 끊고 빨리 오라고 재촉을 하건만.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둘이서 투구봉을 지나 한참을 직진을 하신 모양이다.

ㅎㅎㅎ 내가 없으니 둘이서 헤맨 것이 틀림없다.

흠... 이것이 내가 선두를 갈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이다. ㅋㅋㅋ

느려터진 나와 올라 오느라 힘이 남아서 가외 운동들을 하신건가?

 

투구봉에서 만남재를 향해 내려 오는 길은

다소 가파르고, 돌이 많아 조심을 해야했다.

ㅎㅎㅎ 여기서 오늘 단 4명 뿐인 이쁜이들이 모두 땅을 샀다.

그래도 나는 내리막길이 좋다.

 

무적님의 노래로 잠시 숨을 고르고,

아쉬운 마음으로 사진도 찍고.

 

 

 

 

 

드디어 만남재에 안착!~~~

찹쌀 동동주가 유혹을 하지만, 산행 중에는 절대로 음주가 금지된 산내음 룰이 있어

누구랄 것도 없이 침만 꿀꺽 삼킬 뿐 애써 외면한다.ㅎㅎㅎ

이런 안타까움을 아시는 팬더님이 비장의 음료를 한 잔씩 나누어 주니, 감로수가 따로 없지.ㅎㅎㅎ

 지쳐서 숨이 턱에 찰 때마다 한 잔 가득 마시면 힘이 솟곤 했었지요.

이 곳에서 앞 산을 올라 삼인산으로 가느냐, 아니면 임도를 따라 가느냐, ㅎㅎㅎ

산에서 펄펄 난다는 무적님도 심란한 얼굴이네....ㅎㅎㅎ

대장님이 전날의 과음으로 힘이 드신지 평소의 고집을 꺽고 임도로 가기로 결정.

그런데, 두 양반이 여태 보이질 않으니...

기둘렸다가 함께 가자고 하니, 대장님은 걱정할 걸 걱정하라며 핀잔이다.

하긴 내가 누굴 걱정 하는겨? ㅎㅎㅎ

.

.

.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걸 어쩌라고...

 

 

 

지나 온 병풍산을 뒤로 하고,평탄한 임도를 걸으며,

길 가에 샛노랗게 핀 개나리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ㅎㅎㅎ

오늘 처음 오신 님이 말씀하시기를

산에 다니면서 이렇게 사진 많이 찍고

여러가지 것들을 즐기면서도

느긋하게 하는 산행은 첨이라신다.

ㅎㅎㅎ 요런 것이 바로 산내음 산행의 독특한 멋이며 맛이 아닐까요?

 

여기서 은근히 팬더님의 옆구리를 찔러본다.

ㅎㅎㅎ" 우리 그냥 쉽게 내려 가면 안 될까유?

뭐, 위에서 내려다 보니 별로 멋있는 산도 아닌 듯한데..."

낮의촛불님 곁으로 다가가 "촛불님~ 삼인산으로 갈규?"ㅎㅎㅎ

늘소님과 함께 오신 빨간 점퍼님.

앗싸!~~~ 동조자 3명.

삼인산을 오르는 님들을 비웃으며 임도로 룰루랄라...

 

아직 활짝 피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이쁜 벚꽃들도 보고,

새순이 파릇하게 돋는 온갖 나무들을 보며, 새소리도 감상하며

마을 울 안에 핀 동백꽃도 보고, 배나무 밭도 지나.

죽제품으로 유명한 담양의 대나무 숲도 보고, ㅎ 속도 들여다 보고...

그런데... 걷고 또 걸어도 아침에 출발했던 저수지는 보이질 않네.

아뿔싸. 짐작만하고 쉽게 가려다가 낭패를.

촛불님 말씀대로 원없이 걸었습니다요.

 

재작년인가...

신불산에서 길을 잘 못 들어 알바를 제대로 했던 기억이.

ㅎㅎㅎ 그때도 촛불님과 함께였지유. ㅎㅎㅎ

아무튼 낮에, 촛불은 별 효과가 없는규.

 

 

 

 

 

 

정말 단촐한 산행이었지만,

산내음 산행의 진수를 맛 본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하산주를 먹을 만한 곳이 없어

소재지까지 와 버스를 길가에 세우고

구판장에서 사온 막걸리와 봉달이 김치를 안주로

길 바닥에서 먹은 담양 막걸리.

청주 막걸리가 최고임을 알게 해 준

그저 그런 맛이었지만,

하루 피로를 푸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지요.

조금 늦더라도 청주에서 저녁을 먹을 요량이었기에,

출출함을 메우는 요기로도 충분했구요.

 

고즈넉한 귀로의 버스안.

 

곤한 잠을 주무시는 분,

눈을 감고 하루 산행을 기억 속에 담는 분,

옆 친구와 정담을 나누시는 분.

조용한 하모니카 연주로 자장가를 불러 주시는 분.

자신의 피곤에도 불구하고 지압을 해 주시는 분.

 

우리들은 어느 별의 도움으로 만난 인연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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