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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지/전라도

대둔산 북릉 산행(2009, 12, 26)

by 장끼와 까투리 2010. 1. 4.

 

 

 

 

2009년 마지막 산행이다.

 

산내음 산행 212회. 선자령(09. 1, 3)에서 시작한 산행이 261회.

대둔산 북릉 산행으로 올 한해를 마감하게 된다.

되돌아보니 그야말로 多事多難했던 한 해다.

만감이 교차한다.

 

  같이 가진 않아도 늘 산행지를 미리 알아보고 챙겨주는 남편이 며칠 전부터 걱정을 한다.

위험 구간이 많아 남의 힘을 빌려야할 산행지가 될 것 같다고.

어쩌지... 그래도 송년 산행인데...

현지에 눈이 내리시거나 혹 빙판이 있으면 ‘산 아래서 놀자’ 맘먹고, 따라 나서기로 했다.

날이 날인만큼 버스 안이 북적거리니 참 좋다.

쿠키님 부부가 오신대서 옆에 두 좌석을 찜해 놓고, 오랜만에 온 신짱구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거의 매주 후미에서 나와 발을 맞추던 최선전부회장을 보니 반가움보다 애련함이 앞서네.

예쁘고 귀여운 아기에게 “미운 놈!”하듯, 모질게 손잡는 것으로 내 맘을 전했는데... 알아챘겠지...

어렸을 적에 두어 뼘이나 더 큰 상대와 맞짱을 떠야 할 때,

힘으론 도저히 적수가 될 수 없는 막막한 순간에 양 손에 짱돌을 쥔 기분을 아는지!

일 년간 난 산행마다 금송이라는, 최선이라는 짱돌 두 개를 쥐고 있었다.

물론 호주머니 속에는 또 다른 짱돌 서너 개를 더 숨겨 가지고...

그래서 겁도 없이 이산 저산 가리지도 않고 따라 댕겼다.

 

 

앞서 산길 열어주는 대장님을 포함한 선두팀에게는 안전을 빌며 ,

그들이 미리 밟아 다져 놓은 길 따라가며 행복해 했고,

선두와 후미를 이어 주어 고립감을 어루만져 주던 중간팀에게는 고마워했지.

나를 포함한 여유만만팀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섞여서 하루 산행을 안전하게 마치면 서로 얼싸안고

막걸리 한 사발에 웃음이 넘치지.

사람 사는 것도 이와 같을 진저...

 

  신짱구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산행지 들머리에 도착.

‘재일씨~ 오늘 산에 따라 올라가도 될까?’

‘괜찮을 것 같어유. 힘들면 날아올라 가시구유. 밧줄도 있을 테고, 후미팀 많네유.’

우선 쓰으윽 후미에서 함께 갈 사람들을 살핀다.

석화회장님을 비롯해 최선님, 가시낭구님, 행복샘, 호수님, 상호조카님, 십년후님, 금초님, 호세님, 카르멘님,

우아아!~~~ 많다!!! 신난다!!!

 

일단 쪽수가 많으면 겁이 없어진다.

애들도 여럿이 모이면 겁대가리를 상실하고 사고를 치더라구. 흐흐흐.

가자!~~~

찬찬히 호흡을 조절하며 올라가니 어느새 중턱이다.

조망이 멋진 곳에서 사진을 찍어 준다고 기다리는 호세님 사진기에 방긋 웃어 주고,

금초님 사진기에도 생긋 웃어 주고, 114luck님 사진기에도 벙긋 웃어 주고...

에구... 추운 날 얼굴에 주름살 생기겠다... 호호호...

사진작가님들 손가락 시린 생각도 해야하는데... 고마워요...

 

  서서히 대둔산 북릉의 고도들 높여가니 산 아래서는 상상도 못 했던 풍경이 펼쳐진다.

수증기가 얼어붙은 상고대에 아침햇살이 비치니

마치 나뭇가지들이 영롱한 유리 옷을 입은 듯 아름답기 그지없다.

사철 청청한 솔잎은 어린 산꾼들에게 나이를 알려 주려는 듯 백발이 성성하고,

못지않게 푸른 산죽 잎은 갈색으로 테를 두르고 잎사귀마다 하얀 눈을 소복하게 담았다.

 

  잎 졌다 가여워 여기지 마소 뭐든 두르면 입성인걸.

늘푸르니 철없다 여기지 마소 속속이 든 세월 아실는지.

낮고 여리다 업수이 여기지 마소 소복하게 담아 드릴 마음 넘치니.

 

 

 

 험한 길 조심조심, 편한 길 희희낙락, 여럿이 함께 오르니 행복하다.

힘든 줄 모르고 어느새 올라왔구나.

그런데... 사람 사는 것도 매한가지지만 항상 평탄대로만 있는 건 아니지.

어쩌나...

앞서 가던 팀들이 서 있네.

위를 올려다보니 까마득.

밧줄이 매어있긴 한데, 매듭 사이가 너무 기네.

그래도 선두팀들은 잘들 올라갔나보다.

처음 오신 쿠키님 짝꿍님께서 올라가신다. 어맛! 휴우~ 순발력이 대단하시다.

어디서 짠! 나타났는지 인자무적님이 잠깐만 지둘리란다.

밧줄을 끌어 올려 중간에 매듭을 다시 짓는다. 밧줄이 얼어서 미끄럽고, 손도 시릴텐데...

위에서 손잡아 당겨주고, 아래서 밀어 올려주니 모두 안전하게 오를 수 있었다.

고마워요... 인자무적님, 시몬님, 호세님, 금초님, 호수님, 십년후님, 회장님.

 

  산길을 가다 보면 잘 생긴 나무, 큰 나무 사이에 가끔씩 정말 볼품없는 나무를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숲을 이룬다.

조금 안 모범적이면 어떠랴.

차도를 슬그머니 건너가기도 하고, 어두운 골목길 전봇대에 실례를 해도,

숭고한 삶 잊자하며 한 잔 술에 취해 고성방가를 해도, 교통신호를 눈치껏 위반해도,

남들보다 가난한 부모를 만났거나, 자신의 노력이 부족해 가방끈이 짧기로서니,

여럿이 조화를 이루며 살줄만 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리오.

 

  오늘은 배가 다 고프네...

별일이다...

맛나게 도시락을 먹고, 과일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과자도 먹고, 쵸코렛도 먹고,

얼떨결대장님이 점심 먹는 모습도 박아 주시고.

회장님은 점심배달을 시켰는데 쉬는 날인지 쫄딱 굶었다.

책임이 막중해서 너무나 애를 쓰시는지 입맛이 없나부다.

아닌가? 맨날 산내음에만 신경 쓴다고 마님이 도시락을 안 챙겨주나?

혹시 쌀 떨어졌나? 알아보고 가까운 불우이웃부터 챙겨야겠다... 호호호.

 

 

 

 

중턱에선 상고대가 투명이었는데, 여기선 하얀 스티로폼을 둘러쓴 것 같다.

누군가는 하늘이 추위에 질려서 파랗다고 하더라만, 겨울 맑은 하늘은 유난히 파랗다.

나뭇가지에 핀 하얀 상고대와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

그 아래 경이로움에 감탄하는 산님들.

얼씨구 좋다! 사는 게 별거다냐! 이런 게 행복이지!

내가 행복하면 너도 행복해지고, 네가 행복하면 그도 행복해지지.

맑은 물에 잉크 한 방울 번져가듯 세상이 행복으로 가득 번지면 더 이상 바랄게 무언가!

 

  사는 동안 오르막은 힘이 들고 지루하며, 내리막은 슬프고, 외롭다.

오만, 독선, 아집, 편협함, 고독, 절망 등이 시시때때로 날 괴롭혔고, 타인과 충돌하게 했고, 우울하게 했었다.

그런데 여럿이 함께 하는 산행을 알게 된 후, 오르막의 힘듦도 내리막의 지루함도

자연과 소통하는 즐거움으로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행복함으로 바뀌었다.

산에 올라 몸도 건강해지고, 마음도 행복해지고... 이 모든 것을 내게 준 산내음에 다시 한 번 더 감사한다.

만 3년을 함께 해 주셨던 산내음 산악회 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앞으로 건강이 허락해 산행할 수 있는 날까지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한 분 한 분 소중한 분들에게 이 글로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가정마다 평온함과 풍요로움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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