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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지/강원도

산내음과 함께 부르는 설악가(달마봉과 울산바위 산행기 2009, 6, 23)

by 장끼와 까투리 2009. 8. 4.

 







달마능선을 다 지나 흔들바위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울산바위.
그 씻은 듯 하얀 웅자(雄姿)를 내 손으로 직접 찍어 보려고
가져 와서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카메라를 찾아 파워를 누르니,
어찌 된 일인지 카메라가 작동을 안 한다.
아무리 눌러도 먹통이다.
얼려서 가져 온 물통 옆에 넣어서 카메라가 얼었나?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 보니 그럴 수도 있단다. 배터리가 얼어서...
아쉽지만, 도로 집어넣고 눈 속에 꼭꼭 박아 넣으려 한참을 서서 응시한다.


 
그런데... 기가 막히다.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 카메라를 다시 열어 이리저리 아무리 살펴도 도통 모르겠다.
왜 카메라가 작동을 안 하는지...
혹시나 해서 배터리 케이스를 열어 보니, 어쩌나... 배터리가 없는 거다.
충전하느라 빼 놓고, 다시 넣는 것을 잊어 버렸나보다.
눈을 감고 내 한심한 행동에 헛웃음을 지으며 자문해 본다.
왜 가장 기본인 핵심을 찾는 일이 왜 가장 늦게서야 이루어지는지 것인지...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오늘 산행을 반추한다.


 
한 동안 이러 저러한 연유로 산행을 쉬면서, 문화관광 정도의 산행을 겸한 보길도를 지난주에 다녀왔다.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와 함께 조선시대 시가문학의 삼대 가인(歌人)이신
고산 윤선도 선생의 유유자적, 자연과의 물아지경을 즐기신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서
우리들에게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남편과 많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뭐든 적극적으로 삶을 경영하자.
남편의 직장과 관계된 모임에서 속리산 문장대 산행을 하는 행사가 있어,
동참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문장대와는 인연이 없는지...
산내음을 따라 세 번 속리산을 가 봤지만, 난 여태 문장대를 가 본 적이 없는데...
남편이 달마능선으로 같이 가잔다.


같이 근무하는 직원이 작년에 다녀왔는데, 코스가 험하지 않고, 그 조망이 아주 일품이란다.


 
벌써 대기자도 10여명이 달려 있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일단 신청을 했단다.
이미 다녀오신 분들이 여러 명 취소를 하는 바람에 달마능선 산행에 동참을 했다.
전날 옆 아파트에 사는 분께 아침에 함께 가자고 전화를 하니, 휴대폰 전원이 꺼져있다.
6시 출발이라 일찍 주무시나보다.
혹시 아침에 휴대폰을 열어 볼 지도 모르니 5시 25분에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산봉우리, 백두산, 산우리를 함께 태우고 호호호...뒤가 든든해서 체육관으로 쌩~~~
 


혀를 낼름 빼무는 모습이 천진하고 귀여운 까망이 멋재일이 오랜만이라며 슬슬 놀려댄다.
반가워하는 서로의 맘을 말 안한다고 모르랴...


 
설악산 국제트래킹 행사로 일인 오천 원을 내니, 한 끼 식사권과 썬 캡, 초코파이 2개, 물티슈 등 푸짐하다.
출발부터 기분이 띵호아!
다비대장님이 배드민턴 선수로 대회에 출전하는 바람에 오늘은 인자무적님이 일일 산대장을 맡았다.
늘 가뿐가뿐한 몸놀림이지만, 오늘은 더 신바람이 났다.
산대장이라는 짐은 무거웠을 테지만, 흐흐흐... 한 보따리 선물에 아주 신이 난 것 같다.
나를 따르라!


 
목우재까지 버스로 가자는 얍삽한 생각에 몽땅 버스에 올라타 목우재로 가려는데...
길을 막는다. 다 좋은 것은 없는 겨...
그런데. 어쩌나... 나중에 안 일이지만, 금초님이랑 은초랑 둘이 화장실 댕겨 오는 사이에
버스가 출발해서 금초님이랑 은초만 몸 달게 했구나...
아스팔트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 달마능선 들머리로 들어간다.
미리 약을 먹어서인지, 그 동안 금지됐던 달마능선을 오른다는 기쁨인지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어지럼증은 없다.
남들 쉴 때, 잠깐만 쉬고, 아주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걸으니 후미를 벗어나 중간 팀에
합류를 할 수가 있었다.
신선친구 부부가 앞서서 간 줄 알고 따라 가기위해 더 적극적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잡목이 우거진 오르막길을 한 시간 정도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등짝을 스쳐 절로 허리가 펴지고, 동행하는 사람들의 탄성에 발 끄트머리와 땅에
박았던 눈을 들어 좌우를 살피고, 하늘을 우러른다.
오른 쪽으로는 동해바다가 어슴프레 운무 속에 잠겨 있고.
멀리 왼 쪽으로 코흘리개 머슴아의 인중처럼 물길 흔적만 보이는 토왕성 폭포가 거대한 모습을 나타낸다.
주변에 우뚝우뚝 솟은 설악의 암봉들은 언제 봐도 심신이 단련된 훤훤장부의 얼굴처럼 광채가 난다.
권금성으로 곧게 두 줄로 이어지는 곤돌라 견인선이 마치 빨랫줄 같다.
저기에 펄럭이는 새 하얀 옥양목을 걸어두면 얼마나 장관일까? 큭!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본다.


 
맑은 하늘에 높은 구름이 둥실 떠있고,
발아래로는 머얼리 또 가깝게 뽀얀 설악의 암봉들이 울멍줄멍,
곁에는 든든한(산에서는 예외지만) 남편이 흥흥 대면서 함께 즐거워하고,
사랑하는 후배 산우리, 듬직한 꽃돌님과 친구분, 기여운 토마토와 토마토 친구,
삼종셋트(어처구니, 슬그머니, 얼떨결), 요새 하나 부족한 셋트로 끼워주고 싶은
한량팬더(잘 어울릴 것 같은 데... ), 솜사탕님, 로시니, 막내둥이, 초류향님, 길손님,
번개님, 일찌감치 점심 식사를 마친 정이품송님, 청실, 와인 등과 사진도 찍으면서
간식도 나누면서 달마능선을 향해서 가는 길이 마치 천상을 걷는 듯 행복하다.
(아직 기억력 쓸만 하네...)


 
날다람쥐科 몇 분은 달마봉을 오르고, 나머지는 우회로를 따라서 전진...
전망 좋은 곳에 도착하니 선두가 식사를 한다.
곁에 자리를 펴고 장끼님, 번개님, 올리비아 핫세, 길손님과 두런두런 온 길을 더듬으며
맛나게 식사를 마친다.
산우리팀의 맛난 반찬으로 올리비아님은 아마 과식하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맛난 고추절임까지 한 봉다리 얻고. 호호호...
식사를 마치고 돌아보니, 의리도 없이 선두가 온단간다 말도 없이 사라졌구나!
그래 잘 가라~ 그래 봤자 울산바위에서 만날낀데...흥!
황홀한 그림같은 설악을 배경 삼아 사진작가님들 많이 귀찮게 했다.


 
울산바위까지 오르려면 부지런히 가야한다고 해서 숲속 능선 길은 속도를 내서 걸었다.
막내둥이와 초류향님이 쉬어 가자는 데도 오르막에서 처질 것을 염려해 혼자 천천히 진행했다.
덕분에 아주 호젓하게 설악의 숲길을 혼자서 한참 동안 걸을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전에 최선 부회장도 이런 길을 좋아한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보고 싶다. 한 동안 못 봤던 사람들이...


 
흔들바위에 도착하니, 부침기름 냄새가 진동을 한다.
군침이 돌만도 한데, 이상스레 역겹다.
얼른 사진 한 장 남기고, 울산바위를 향한다.
함께 가는 호수님이 투덜거린다. 촛불님도 함께 울산바위까지 가는 줄 알고 기다렸는데
시간만 허비했단다.
안 갈거면 얼렁 가라고 하던지... 칫 심술꾸러기. 훗!


 
에구... 힘 들어라...
호수, 도올, 비비, 얼떨결, 모두 휙휙 잘도 가누나.
도로 내려갈까, 그냥 올라갈까... 내 발길을 방해하는 돌멩이 수보다 더 많이 갈등을 한다.
달마능선에서 내 체력의 90%이상 소모를 했으니...
살짝만 걸려도 푹 고꾸라질 거 같다.
그나마 철 계단이 수월했다. 쥐도 나고, 어지럽기는 했지만 발 디디기가 편하니...
내려오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얼마 안 남았으니 힘내라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한테 기를 받았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기를 뿜어 준다. 고맙다.
 


어느새 따라 붙은 어처구니님한테 스틱을 맡기고 나니 훨 수월하다.
이렇게 나는 울산바위에 올랐다!~~~
울산바위에서 느낀 감동은 말로 글로 표현할 수가 없어 시체말로 입 다구리다!


 


어울려 사진을 찍고, 너른 곳에 앉아 간식도 나누고,
어머나! 내가 맨 끝인 줄 알았는데, 이어서 장끼님까지.
이 자리를 빌어 한량팬더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장끼님 바로 뒤에서 따라 올라 온 이유를 알아요.
혹시 모를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서 일부러 천천히 뒤 따라 온 것을.


 
이제는 다들 내려가려고 하는 데, 금초님과 길손님이 불쑥 올라오신다.
얼마나 반갑고, 놀랍던지...
솔직히 두 분께는 미안하지만, 기대도 안 했다.
모두 박수를 치면서 환영했다.
금초님은 지난 북한산 백운대를 도올님의 도움으로 같이 올랐었다.
얼마나 좋아 하시던지... 아마 그때의 감격이 지금까지 주욱 산내음과의 산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두 분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뒤에 처질 것을 염려해 장끼님과 내림 길을 재촉한다.
올라 갈 때는 그렇게 힘이 들었던 계단이 내려 갈 때는 누워서 떡 먹기다. 아니 식은 죽 먹기다.
인생길 역시 오르막처럼 어려운 길이, 내리막처럼 쉬운 길이 있어 오르락내리락 지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리...
둘이서 하루 산행의 감격을 나누면서 내려오니, 선두팀이 자리를 잡고 부른다.
산내음 조류 부부 해냈다!
달마능선과 울산바위까지.
시원한 막걸리 잔을 높이 부딪혀본다.


 
아쉬운 것은 신선친구 부부와 멋진 하루를 함께 나누지 못 한 것.
앞서 간 줄 알고 부지런히 따라 가느라 가며 쉬며 기다리며 만나는 잠깐만의 조우마저 놓친 셈.
가끔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선두에 따라 붙는 실수도 한다오. ㅎ ㅎ
우리 부부가 함께 산행하면서 처음으로 금송회장님을 저녁 먹을 때 만났다. 큭!
음성 휴게소에 혼자 떨궈 놓고 오자니 서운하다.
지하통로 혼자 건너가려면 무서웠을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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