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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지/강원도

백우산, 경수계곡 (2010. 07. 10)

by 장끼와 까투리 2010. 7. 12.

 

 

지난 주에 길을 잘 못 드는 바람에

맘 먹고 따라 간 방태산 자연 휴양림의 아름답다는 계곡과 폭포를 못 보고

험하고 미끄러운 계곡길로 내려 오느라 돌뿌리에 채여 미끄러지면서 넘어져서

아직도 오른쪽 엉덩이가 장형을 당한 듯 울긋불긋하다.

앞 팀 꼬리를 놓쳐서 팬더부부, 처남커플, 우리부부 목 터지게 산내음을 얼마나 불러댔던지...

둘만 뒤쳐진 것이 아니라 그나마 안심은 됐지만...

아래서는 우리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잠시 서서 기다리면 안 됐나?

산내음 꼬리표라도 달아주던가...

꼬리 놓쳤다고 애먼 짝꿍한테 투덜댄 걸 생각하면 미안하네...ㅎ

아무튼 정나미 떨어져서 가기 싫다는 짝꿍을 또 꼬드겼다.

한 줄 메모에 올린 얼대장의 글을 보니 안쓰러워서 한 두 자리 채워주고 싶기도하고...

지난 주에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온 후배 은초가 함께 가자고도 하고...

8월 초순에 백두산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어서 말대로

미리 운동도 좀 해 둬야 할 것 같고...

ㅎㅎㅎ 만나면 기분 좋은 사람들도 보고 싶고...

 

 

여름엔 7시 출발이면 상당히 여유롭다.

아침도 챙겨 먹고, 느긋하게 나가서 몸을 풀며 금초님과 은초를 기다렸다.

차를 함께 타고 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

ㅎ 함께 산내음에서 산행을 하던 @@이 반가이 인사를 하네.

술을 마시면 조금 오버를 하지만 착하고 조용해서 참 이뻐했던 동생이었다.

어쩌다 다른 산악회로 떠났고, 또 그 곳을 떠나 또 다른 산악회를 만들었단다.

잘 되기를 바랬고, 언젠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랬는데...

사람 사는 데가 항상 시끌벅적하고, 갈등이 없을 수 없지만

머물던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것은 항상 진중해야 한다.

내 맘에 안 들고, 내 이상과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인 곳이니.

마주 대하기 힘들면 잠깐 쉬면 될 터이고, 원하는 바는 단호하게 말하면 될 터이고

그래도 안 되면 무시하고 다니면 될 터인데... ㅎ 쉽지 않겠지만...

기왕 시작했다니 잘 되기를 빈다. 진심으로.

 

 백우산(白羽山). 산행 후에 찾아 보니 겨울에 눈이 쌓이면 새가 날개를 펼친 것 같다네.

ㅎ 오늘 내 과제는 이 백우산을 올라 경수계곡으로 가는 일이다.

가족고개(왜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까...)에서 떼거지 사진을 찍고

짝꿍과 가시낭구와 서둘러 선두에 붙어서

낙엽이 폭식한 완만한 숲길을 살살 몸에 열을 가하며 올라간다.

뇌로 혈액이 충분히 공급될 텀을 가져야 빈혈로 쓰러지지 않으니

쉬엄쉬엄~~~

ㅎ 그러다 보니 여지없이 또 후미다.

그래도 오늘은 빽이 많으니 든든해서 참 좋다.

적당히 촉촉한 숲 길이 미끄럽지도 않고, 먼지도 안 나니 더 좋다.

 

 

그런데...오르면서 옆을 보니 군데군데 나무에 경고문구가 붙어 있다.

흙이 파 헤쳐진 걸 보아 혹시 산돼지가 출몰하니 조심하라는 경고인가?

그냥 지나치려다 읽어보니 저런... 유해발굴터란다.

산행기를 쓰면서 찾아 보니 이 곳 홍천전투는 절대적인 전투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6.25 발발 직후

서울에 투입된 국군이 전열을 정비할 3일간의 시간을 벌어 준 중요한 전투였단다.

이 곳 홍천전투 외에도 강원도는 격전지였던 만큼 얼마나 많은 전투가 있었으랴...

 

 짙푸른 녹음 한가운데 마르지 못하는 땅 속. 그 아래서 젊은 영혼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

초연과 포성이 쓸고간 깊은 계곡.......비목 하나 세워줄 여유도 없었으리라...

님들께서 공포와 절망의 거친 숨결로 내달렸던 이 곳에

우리는 자유와 여유로움을 호흡하며 오르고 있습니다.

물 한 모금 따라 놓고 묵념할 여유도 없이 산을 오르는 나는 대체 누구인가?

지나고 나니 후회가 된다.

 

 요새 김 훈의 <칼의 노래>를 읽고 있다.

이 소설이 나온 지가 아마 십년은 되었을 게다.

누구나 다 아는 성웅 이순신 장군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고,

아들 녀석이 읽고 내용과 느낌을 대충 말해 주었고,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들었던 책이라 읽기를 미루었었는데

대학 도서관에 근무하는 딸이 2010년 추천도서라면서 읽어 보란다.

 

 어느 보름달이 떠오르던 날 왜군과의 전투.

 

싸움에서 승리한 장군이 우수영으로 가는 물길에서 물결에 흔들리는 선실에 누워

" 나는 갑옷 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나는 달빛에 젖어 잠들었다."라고 쓰고 있다.

작가 김훈은 " 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라고 했지만

이 글을 읽고 영웅도 아니고 작가도 아닌 나는 슬퍼서 펑펑 울었다.

 

 조국을 위해 젊음을 바친 님들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잠깐씩 쉬어 시원한 골바람으로 등줄기와 겨드랑이 땀을 잦추고

팬더표 생명수와 가져 온 과일들로 원기를 돋우면서 오르니 어느새 백우산 정상이다.

여유롭게 사진 찍을 틈도 없이 재촉하니 사진사들이 아쉬워한다.

갈 길이 멀다니... 어쩌랴...

평평한 갈림길 공터에서 둘레둘레 나누어 앉아 점심을 먹었다.

경기도 광주에서 왔다는 산악회 어느 분이 여고 때 은사님 얘기를 하신다.

이 산 이 곳에서 길을 잃고 당황해 하시던 은사님에게 도움을 주셨고

지금까지 친밀하게 연락을 하고 지내신단다.

지난 학기 평생교육원 수료식에서 뵌 은사님이라 더 반가웠다.

세상이 이리 좁다니... 늘 어디서나 언행을 삼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 식사 후 산을 조금 더 내려 서니

반사된 바위가 유난히 하얀 계곡이 나타난다.

하얀 바위에 비해 물빛은 맑지가 않다. 수량이 적어서 그런가? 물 비린내 마저 나네...

전에 갔던 덕풍계곡의 금빛 맑은 물이 떠오른다.

참 행복했던 산행이었었지...

느낌으로는 물이 반대쪽으로 흘러야 할 것 같은데...

아마 계곡 옆 길을 비스듬히 오르면서 걷다 보니 착각을 하나보다.

 

 낙엽송 쪽쪽 뻗은 숲속, 연보라와 하얀 산수국 꽃이 그득한 군락지에서 사진도 찍고

목이 말라 물도 마시고, 과일도 나눠 먹다 보니 ㅎ 후미대장이 간 곳 없네.

 

 계곡이 너무 길었다.

물 속에서 실컷 놀았어야 했는데...

버스 타는 곳까지는 포장도로를 한참이나 내려와야 했다.

ㅎ 나는 워낙 물을 무서워하기도 하지만 물 결벽성이 있어서 별로 아쉬울 것도 없다.

그냥 남들이 노는 모습만 봐도 족하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어려움을 나누었으니 행복했다.

앞 팀을 놓칠까봐 중간중간 지둘려서 길 안내를 해주셨던 금초님

위험한 곳 안전하게 보살펴 주셨던 팬더

후미에서 끝까지 함께 하며 사진 찍어준 산우리와 호세

전체를 아우르며 진행을 맡아주셨던 회장과 부회장

모두 고마운 사람들이다.

 

 

여주 천서리에서 먹은 맛난 막국수와 수육이 오늘 산행의 화룡점정이었다.

맛도 양도 흐뭇했다. ㅎㅎㅎ

그리고... 봄바람님과 에스엠님, 썬샤인님을 알게 된 것도 기쁨이었다.

 

 음력 오월 스무아흐렛날이니 완전히 비운 달이 서서히 차 오를 것이다.

어둠으로 비운 달은 밝음으로 채워질 것이고,

밝음으로 비운 달은 어둠으로 채워질 것이다.

비움도 채움이요. 채움도 비움인 것을...

 

 달이 차 오른다 가자~~~ 나를 비우러, 나를 채우러... 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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