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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지/전라도

무등산 산행 2010. 05. 01

by 장끼와 까투리 2010. 5. 5.

 

무등산은  광주의 옛 이름인 무진주에 있는 산이라 하여 무진악 또는 무악이라 불렀었고,

대개 큰 산이 그렇듯 무속과 연관하여 무덤산, 무당산이라고도 했단다.

무등산은 대체로 바위가 아니라 흙으로 이루어진 산이지만,

정상 부근 서석대, 입석대, 규봉의 바위가 웅장하며 아름답다.

그래서 고려 시대에는 서석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불교 전래 후 부처가 세상 모든 중생과 견줄 수 없이 우뚝하다는 존칭으로

옛 이름과도 유사한 무등산(無等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는 같은 우리말 이름에 대한 한자표기를 바꾸어 해석을 달리했을 뿐으로,

원지명은 광주의 고유지명인 무들 또는 무돌에서 비롯한다.

무진(武珍)에서 珍은 오늘날에는 한자음으로 진으로 읽으나,

과거에는 새김으로 읽어 들,돌로 발음하였고, 무등(無等)또한 비슷한 음차표기라 한다.

 

 위의 내용도 일설에 불과할 뿐.

산을 터전으로 산 안에서, 산에 기대어, 산을 바라보며, 

그렇게 살던 이들이 나름대로 이름 지어 부를 수 있는 것이 산 이름인게지...

 

 이름 좋으면 뭐혀~... 자꾸 부르면 대답하기만 구찮지...허허허...

 

 

어딘지는 모르지만 도로 양쪽을 색색의 영산홍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고개을 넘어

메타세콰이어의 연초록 보드라운 잎사귀들이 서로 부벼대며 살랑대는 모습을 보며

멀리 가까이 산자락마다 능숙한 화공이 어우러지게 그려 놓은 파스텔화를 감상하며

오늘 산행 들머리인 안양산 휴양림 입구에 도착. 

해오름 고향친구 해찬솔이님과 채리님이 미리 입장권을 준비하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의 우정이 눈물겹게 아름답다.

가볍게 몸을 풀고 연초록을 배경으로 떼거지 사진을 박는다.

 

 안양산이 무등산을 오르기 위한 가벼운 산책 수준인 줄 알았는데...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파르고, 기온이 높아 힘 들어 듁을뻔!

선인장과 특효약을 미리 나눠 먹기를 잘 했지...ㅎㅎㅎ

 

가파른 안양산을 거의 오르니 여기도 공룡능선이 있네.

우회할까 멈칫거리는 사이 다들 우루루 공룡의 등뼈로 올라 붙네.

에라! 삼수갑산을 갈지라도 따라 가보자~~~ 

오늘 처음 산행에 따라 온 행복샘 동료 몇명이 우회를 선택했는데

내가 진행해 보니 참 잘 했다는 생각이다.

도올님과 아봉님, 무거운 사진기를 든 호세님이 더 힘들뻔.

일단 몸을 낮게 바위에 밀착시켜 엉금엉금 기었다.

역시 도올님이 곁에서 도와준 덕에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고마워라...

 ㅎ 난 야성스런 폼이 잘 안 어울린다. 그냥 여성스런 폼으로 가야지...ㅎㅎㅎ

 

저 아래 산엔 꼭대기까지 만화방창인데, 안양산은 여전히 늦가을 내지는 겨울이다. 

백마의 갈기처럼 반들반들 누렇게 아름다웠을 억새는 겨울 찬 바람에 날카롭게 벼른 줄기만 앙상하다.

마치 늙은 백마의 기름기 빠진 엉성하고 뻣뻣한 .갈기같다고나 할까? ㅎ

 

 표면온도가 섭씨 6000도나 된다는 태양에 자그마치 몇백미터 이상 가까워지건만

고산엔 온기는 커녕 냉기만 가득하다니...

홀로 높아진 것이 포근함을 결(缺)했구나...

과학적으로야 당연한 현상이지만.

 

 산우리가 찬 바람에 오돌돌 떨며 얼른 올라오라 채근하네.

안양산 정상에서 사진 찍어 준다고 언니를 지둘렸구나...

 

세계지도를 펴 놓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좁은 땅이지만

산행을 하다보면 왜 이리 넓고도 긴지...ㅎㅎㅎ

 

 안양산에서 이어지는 무등산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오른쪽 앞이 입석대, 왼쪽 뒤가 서석대란다.

맨 위 철탑이 보이는 곳은 군사보호구역이라 접근이 금지된다네.

에구... 언제 저기까지 가나...

안양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서 ㅎ 안양산 백마 갈기에서 점심을 먹었다.

 

장불재로 가는 도중 산상에서 작은 동창 모임을 하는 해오름팀을 만났다.

홍어회 두어점 얻어 먹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막걸리도 한 잔 했으면 좋으련만... ㅎ 산행 중엔 절대 음주 불가!!!

안양산에서 나무해다 팔고, 사찰 지을 때 세숫대야에 모래 담아 머리에 이고 올라가 몇십원 벌었다나...

당시 다들 그렇게 살았지.

어지간한 어려움쯤은 너끈히  견딜 수 있는 근성이 그렇게 만들어진거지.

시골에서 어렵게 살았던 추억이 더 끈끈한 우정으로 남는거고...

 

안양산을 지나 무등산 입석대로 향하는 장불재는 산 위의 드넓은 공설운동장 같다.

요새 비가 자주 오시기도 했지만 산 정상에 질퍽이는 습지가 형성될 정도로.

무등산의 덩치를 재삼 확인할 수 있었다. 

요기서 좌측 위로 난 신작로가 나를 유혹한다.

저 길로 가면 입석대는 못 가는데... 

눈으로 보기엔 신작로로 가다가 쬐금만 우측으로 올라가면 서석대일 것 같은디...

ㅎ 산에서는 눈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

산은 평면이 아니고 입체. 그것두 아주아주 겹겹이 중첩된 입체다.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도 그 사이에 작은 봉우리 몇개를 넘어야 오를 수 있는 경우도 있으니...

에구 예전 다비대장 말대로 교과서대로 가야지...ㅎㅎㅎ

 

요리조리 궁리하고 재는 엉아가 안 됐는지 바위에 앉아보란다.ㅎㅎㅎ

사진이라두 찍어줘야 따라 갈 것 같았는지...

ㅎ 새로 장만한 사진기 테스트용이었나?

좌우지간 호세님 덕에 후미 중에 후미지만 사진은  선두네.

 

 

 옆길로 안 빠지고 올라온 언니가 기특스러운지 (ㅎㅎㅎ)

입석대 전망대에서 내려 오던 산우리가 되짚어 올라와 사진을 찍어준다. 고마워...

그런데...  입석대 발치에 누가 묘를 썼네.

그곳에 음택을 정한 사연이야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후손들이 조상묘 잃어버릴 일은 없겠다.

그래서 발복은 하셨는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그 다름을 인정하지만 뭔가 자연스럽지 않으면 불편하고 불쾌하다.

호화분묘에 비하면 아주 소박하지만. ㅎ 어쩌면 그 특이함으로 사람들에게 말거리를 제공하기도.

 

 입석대가 서석대보다 훨 멋지다니 서석대는 안 봐도 서운하지 않을테니

장불재로 도로 내려가서 신작로로 가야지...

 

내려 오는 사람들한테 "여기서 서석대까지 멀지유? 서석대두 입석대랑 비슷하지유?" 

 

"에이~ 여기까지 왔으면 서석대까지 금방이니 가세요. 서석대가 훨씬 더 멋있어요."

ㅎ 이 말에 홀려서 망설이니 도올이 서석대까지 가자고 하네.

 

ㅎ 그런데 나만 후미팀에 합류시켜 주고는  어디로 가버렸네!~~~ 

중봉을 지나 중머리재까지 고난의 여정을 생각하면 ㅎ 따라 내려갈걸...

그런데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산행기를 쓰면서 생각하니 서석대를 안 봤으면

많이 후회했을 것 같다. 전에 봤던 사람들이야 안 봐도 그만이겠지만.

행복샘과 함께 온 막내 간호사샘이 힘들어한다.

당연하지. ㅎ 나두 처음엔 그랬는데... 

구심 3알을 먹이고 쥐가 난다는 다리를 아봉과 주물러 주면서 완주를 시켰으니

산내음에서 입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는구나.

 

 燈燈代代 - 인정있는 사람은 남을 행복하게 하고, 그 마음은 등불을 옮기듯 차례로 이어지는 게지.

 

 

저 위에 보이는 天王, 地王, 人王峰은 군사보호구역인가?

더 이상 못 가니 사진으로 남기고...그런데, 사진 색상이 증말 상서롭네...

 

 ㅎ 더 올라 가래도 못 간다!!! 

내 전공인 내림길. ㅎ 서석대로 내려간다. 둏구나!~~~

 

 

입석대와 다르네. 그런데 설立 아닌가? 입석대나 서석대나 돌이 섰다는 말 아닌가?

ㅎ 아니구나! 瑞石臺(서석대)의 서(瑞)는 상서로울 瑞네.

저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저렇게 서 있으니 상서로울만도 하지...

올 봄 날씨는 맑은 날이 드물었는데, 서석대 위로 보이는 하늘은 유난히 높고 푸르다. 과연 상서롭구나...

걸출한 인재가 많이 나오는 빛고을. 무등산 서석대에서

늦둥이 달라고 빌 처지는 안 되니, 시집간 딸에게 영특한 손주  점지해 달라고 빌었다.

 

ㅎ 여유천천히도 아니고, 여유만만디도 아니고, 여유없는 팀.

힘겹게 서석대에서 내려오니 에구... 중봉이 쩌어~기라네.

그나마 오르막이 완만하니 다행. 

 

 중봉이 오늘의 마지막 고지.

이제는 하산이다!~~~

결코 만만치는 않았다.

 

 

 중봉에서 내려 오는 길이 돌이 많아 힘들었지만

내려다 보이는 봄산의 풍경은 파스텔화처럼 경계가 불분명한 초록의 스펙트럼이네.

군데군데 한지 바른 은은한 청사초롱을 켜고.

 피어나는 봄 잎사귀는 마치 솜털이 보송보송한 열여섯 처녀의 살결처럼

환하고 촉촉하며 투명하다. 그래서 설레고...

가을 단풍은 아무리 곱다한들 마치 짙게 화장한 늙은 여자의 피부처럼

푸석하고, 칙칙하고, 거칠다. 그래서 허무하고...

 

 이렇게 우리 인생엔  설레임과 허무함의 순환고리가 작게든 크게든 반복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누구는 산다는 것이 '고비고비 산 넘고 물 건너며 제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무엇보다 여기 이렇게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삶의 이유인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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