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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지/경기.충청

마니산(2009, 9, 12)

by 장끼와 까투리 2009. 9. 14.

 

산행지가 카페에 올라오면 그냥 일단 예약을 해 놓고,

어지간하면 모든 일정을 토욜에 맞추었던 적이 있었지...

아침에 버스 안에서 대장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아... 오늘 가는 산이 여기구나...  ㅎㅎㅎ

들머리부터 헥헥대며 오르막 산길을 비몽사몽으로 오르면

여유롭게 점심 식사하는 앞 팀들이 부럽고

남들이 먹으니 도시락은 풀지만 입맛은 소태.

반도 못 먹었는데 남들은 커피까지 마시고 짐 꾸리네.

한 주걱 남짓 가져온 밥도 다 못 먹고 허겁지겁.

방금 벗어 놓은 장갑은 어디로...

엉덩이 깔개 주머니는 왜 안 보이는겨...

 

 그럭저럭 이력이 붙으니, 매번 먹던 알약도 세알에서 두알로 줄고

산에서 먹는 밥이 맛있어지고, 밥 먹으며 하는 농담에 웃을 여유도 생기고,

그 중 제일은 가까운 발 밑만 보던 눈을 들어 멀리 산천초목을 완상할 수 있게 된 것.

조용히 떨어져 걷는 능선길에서는 내 속에 침잠할 줄도 알고...

 

 그런데...

이제는 산을 고르는 나쁜 버릇이 생긴거다.

산 자체로 고른다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산을 고른다는 거다.

더 엄밀히 말하면 내 몸에 맞는 산.

험하지 않고, 산행시간도 적당하고, 나로 인해 남들에게 염려를 끼치지 않는.

 

 

마니산...

 

화문석, 인삼과 함께 강화도하면 으레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산.

원래 이름은 두악(頭嶽)으로 머리를 뜻하는 머리산 또는 마리산으로 불리우기도 하는 산.

환단고기 단군세기에 의하면 단군왕검 무오 51년(BC 2282년)에 쌓았다는 참성단이 있는 산.

이 참성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천단으로 여러 번의 증개축으로 본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지만,

1956년 제37회 전국체육대회부터 성화를 채화하고, 개천절에는 지금도 제천행사가 열린다.

 

 마니산은 어딘지 신령스럽고, 경외지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더 마니산을 가 보고 싶었다.

아래서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직접 산을 올라 참성단을 눈으로 보고 싶었다.

성화를 채화하고, 제천행사도 하는 산이니 내 몸에도 크게 무리는 없을테고...

특히 장끼님이 꼭 가 보고 싶어하는 곳이라, 바쁜 일이 산적해 있음에도 함께 산내음을 따라 가기로...

 

 전날 저녁부터 비가 내리더니 강화도를 향해 가는 중에도 간간이 비가 내려 은근히 걱정이 된다.

늦게 카페에 들어 가니 촛불님도 걱정이 되는지 쪽지로 " 그나저나 비가 오지 말아야 할틴디...딸꾹!~"

에구... 해장 타령을 하길래. 곤장이나 기대하삼!~~~ ㅎㅎㅎ

참 이쁘기도 하지... 산행 예약은 펑크를 안 내니... ㅎㅎㅎ

통로를 사이에 두고 작은자유님과 귀와 입을 맞대고 영양가 풍부한 얘기를 나누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에 활짝 웃는 모습이 이쁘고,

같은 크기와 색깔의 공이라도 탁구공과 골프공의 느낌을 감으로 구별하듯

어딘지 무게가 느껴졌던 이유를 알게 됐다.

ㅎ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인 게지...  좋은 사람과는...

 

 앞자리 울 동무 신선님과 가시나무님 자리에 궁둥이를 들이밀고 앉아

또 다른 영양가 풍부한 얘기를 나누었다.

시골 중학교 천진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 주는 신선님의 재담은 늘 들어도 웃음이 절로 난다.

목소리가 특이해도 들을 수록 정감있는 가시나무님의 깊이가 느껴지는 말에

다음 산행 때는 꼭 옆자리에 앉아 가고 싶다.

개띠 나이에도 남편을 저렇게 섬기는 여인이 있다니... 

다음 산행기를 쓰게 되면 가시나무님의 섬김에 대해 꼭 언급을 하겠습니다.

그 섬김이 사전적 의미와는 넓이와 깊이가 다름을 일단은 밝혀 둡니다.

 

 

 

 

항상 듬직한 우리 멋재일의 굿아이디어로 산행 중 가장 성가신 계단도 피하고,

입장료도 절약하는 코스로 들머리를 잡았다.

 

언제 울었느냐는 듯 아가의 말간 눈속 같은 하늘,

팔 들면 겨드랑이로 스며들어 가슴팍 솜털까지 보송하게 세우는 바람,

들이 마셔 세심하게 음미하면 짭짜롬한 바다 내음이 나는 강화도 공기, 

허허실실 이죽거리는 부적님의 우스개소리, 톡톡 튀는 촛불님의 촌철살인,

늘보의 찐한 야그(야한개그)... 우스워 죽것당... ㅎㅎㅎ

참성단 오르는 길목에서 떼거지 사진을 꾸우욱 박고!

사백 몇m라더니 왜 이리 힘드냐고 투덜대는

신입생의 구시렁거리는 소리에 심심치 않게 웃으면서

열심히 오르다 보니 후미가 보이질 않네...

 

 회장님은 항상 내 차지였는데...

진순이가 오니께 오늘도 난 찬밥이구나...ㅎㅎㅎ

어디메쯤 오는지 기척도 없다.

나중에 알았는데, 처음으로 산행을 하는 신입생이 도저히 따라 올 수가 없다하여

한량팬더님이 버스가 있는 곳까지

함께 데려다 주고 되짚어 올라 오는 것을 지둘리느라

산내음 허씨 일가를 포함한 후미팀이 아주 늦어졌단다.

늘보마저도 남편 팬더를 다시 봤단다.

팬더님 애 많이 쓰셨어요. ㅎㅎㅎ 복 받을겨!~~~

더우기 후미는 중간팀을 참성단 헬기장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사진도 한 장 없다. ㅠ

 

 

헬기장에서 출발하려고 하니 팬더표 감로수를 꼭 마셔야 출발한다는 님이 있어서리...

팬더표 감로수와 성초롱표 과일 슬러시로 원기를 회복하고, 환하게 웃으면서 사진도 찍고,

평평한 바위들이 일부러 쌓아 올린 성처럼 등뼈를 이룬 마니산을 줄줄이 줄줄이 밀고 당기면서...

물 빠진 개펄과 반듯하게 직사각형으로 정돈된 논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와 먼 바다 위 하얀 구름과 해안도로 가에

옹기종기 평화로운 마을을 바라 보면서...

 

금초님과 로키님의 수고로 예쁘게 사진도 찍으면서...

 

땀 닦고 한숨 돌리며 뒤 돌아 보니,  

마니산 참성단 봉우리에서 주욱 지나온  바위 능선이 인생길 같다.

자칫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날도 있었고, 간간이 우뚝 자부심을 느낀 순간도 있었지...

그럭저럭 오르락내리락 권태로운 날도 있었을테고...

이 능선을 지나야 집으로 돌아가 듯

우리네 인생도 이런 고비를 지나야 편히 쉴 수 있으리라...

 

 

 

 

 

 

 

 

 

 

 

 

 

 

 

 

 

 

 

 

 

 

 

 

 

 

 

 

 

선두는 정수사를 거쳐 함허동천을 지나 왔단다.

사람 사는 것이 천편일률이라면 뭔 재미랴?

후미는 조금 수월한 길로 하산을 했다.

깜량껏 사는 게 인생이지...

 

강화도 마니산을 오면서 산행과 더불어 기대했던 또 한가지 樂.

싱싱한 회, 함께 있어 좋은 사람들, 안전하게 산행한 후의 안도감과 성취감, 또 한가지 ?

흡족하고 행복했다.

마니산, 참성단...

바로 거기서 산내음의 불꽃을 다시 지폈다. ㅎㅎㅎ 버스 옆구리가 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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