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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지/경기.충청

민주지산을 다녀와서

by 장끼와 까투리 2009. 8. 4.
나는 행복합니다. --- 민주지산을 다녀 와서.

 

 

 

 장마가 시작된단다.....

당연히 초여름이면, 오호츠크해 기단과 북태평양 기단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엔 장마전선이 형성되고, 이 정체전선이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지루하게 비가 내리고, 이는 무더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폐활량이 적고, 저혈압이고, 근력이 부족한 내게는 일년중 가장 산행하기 어려운,

산행하기 싫은 계절이 바로 늦봄에서부터 초가을까지이다. 

 후미에서 회장님이나, 후미대장님을 속 터지게 해야 하는 나로서는 늘 고민이다.

 무슨 이유를 대서 산행에 결석을 해야 하지?

 당분간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을 해 볼까?

 아님, 장기 여행 중이라고 속여 볼까?

 아프다고 핑계를 댈까? 별의별 궁리를 다 해 본다.ㅎ ㅎ ㅎ

 

 매 산행마다 덥다고 구시렁거리면 반디부회장님은

 “그래도 산에 올라가면 션 ~ 햐! 다리 성할 때 열심히 다닙시다.”며 어르고,

 회장님과 도올님, 무적님은 “집보다 산이 더 션하지유. 계곡에서 알탕하면 끝내주는데!" 라면서 꼬드기고....

 뻔한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함께 산행하자는 이쁜 마음이 고마워, 토요일 새벽마다 배낭을 꾸린다.

 

 지난 번 유명산에는 집안행사가 겹쳐서 결석을 했더니, 빈자리가 많았단다.

아침에 반디부회장님의 문자를 받고 어찌나 미안하던지....

ㅎ ㅎ ㅎ 품이라도 사서 보낼 걸 그랬나?

 

 목요일 오후부터 산행신청 예약방을 풀 방구리에 생쥐 드나들 듯 들락거리면서 살핀다.

 추가 취소는 없는가, 급히 가고 싶다는 사람은 있는가.....

만차가 될 듯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비가 많이 올 거라는 기상청 예보가 있어서인지, 학생들 시험기간이라서인지, 의외로 취소가 많다.

예약하신 님들에게 급한 사정이 생기지 않기를 내가 아는 모든 위대하신 님들께 빌고 또 빈다.

다행히 취소하셨던 분들이 일이 해결되어 다시 예약을 하시고,

다른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원진들의 고민을 아시는 고마운 님들의 도움으로 42명이나 된단다.

일단 40명이 넘으면 난 맘이 홀가분하고, 엄청 신난다.

 

날씨는 흐리지만, 일단 비는 내리지 않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민주지산을 향해 출발~~~

 평소엔 빗나가기도 잘 했던 기상청 예보가 오늘은 잘도 맞을라나 예상대로 비가 내린다.

다행히도 아주 많은 량이 아니고, 천둥번개도 없으니 등산하기엔 뙤약볕보다는 훨씬 좋단다.

배낭 커버를 씌우고, 비옷을 챙겨 입고, 산을 오른다.

길은 질척거려 미끄럽고, 비옷을 입어서 통기가 안 되니 온몸이 땀에 젖고,

심장이 터질듯하고, 머리도 욱신거리고, 속도 메스껍고, 어지럽고.... 멀리 내다 볼 시야도 없고,

조금 트인 곳에선 세찬 비바람에 날려 갈 듯하고.....

 

그야말로 고행이었다. 

 

 후미에서 동행하는 님들도 모두 나와 같으리라 생각하니, 내색을 할 수도 없다.

 우린 뻔한 본심을 숨기고 서로서로를 격려하면서 대피소에 도착했다.

허기짐도 없고, 식욕도 없지만 다음 진행을 위해 지저분한 바닥에 앉아 식사를 한다.

종이인형님의 맛깔스런 열무김치. 시황제의 산해진미가 이보다 나았을까?

준비해 온 냉커피도, 과일도, 한가하게 나눠 먹을 시간도 없이 짐을 챙겨 이미 출발한 선두팀을 따라

또 다시 걷는다.

 

5명의 탈출조는 이미 계곡을 따라 산을 내려갔단다.

남은 후미는 회장님과 반디부회장님, 흑진주언니, 선인장님과 친구분, 그리고 나, 6명이다.

탈출로가 있는 삼거리에서 갈등을 한다.

비는 아까보다 더욱 세차게 내리고, 바람도 어찌나 세게 부는지 갈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켜준다. 히히히....

회장님이 선두와 중간에 탈출을 무전으로 타전하고, 우리는 물한계곡을 향해 하산을 한다.

 

다행히 진흙이 아니고 모래가 섞인 흙이라서 미끄럽지가 않다.

숲속은 마치 해가 뜨기 직전처럼 어둡다.

청일점이신 금송회장님이 계셔서 크게 안심이 되고, 덜 무서웠다.

흐흐흐.... 금송회장님이 진짜 무서웠을지도.....

산을 거의 내려오니, 비가 그쳐서 우린 그나마 사진도 찍고, 간식도 나눠 먹으며,

한가로움을 즐겼다.

 

선두대장이신 도올님이 무전기로 선두와 중간이 함께 모여서, 삼도봉까지의 진행을 포기하고

하산을 결정했다고 연락을 해온다.

탈출조와 후미팀들이 많이 기다릴까봐 결단을 내리셨나보다.

삼도봉까지 진행하기를 원했을 님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모두 안전하게 하산하시기를....>

비구름이 잠깐 빗긴, 가장 맑은 쪽 하늘을 올려다 보며 빈다.

 

주차장에서 빙그레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아 주시는 멋재일씨를 보니,

내가 하루 산행을 안전하게 마쳤음을 실감한다.

 

아!~~~ 깜냥대로 해냈구나......

 

‘ 왜 저런 고통을 감내하면서 당신은 산에 가는 겁니까? ’

“행복해지기 위해서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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