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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지/경상도

영남 알프스 천황산과 재약산(2008, 10, 4) --- 억새의 노래

by 장끼와 까투리 2009. 6. 10.

 

 






 
주위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억새지만,
쓸쓸한 가을날,
만산홍엽이 스산한 갈바람에 날려 간 가을 끝자락에,
마치 세월에 숱 적어진 꺼칠한 흰 머리털 인 중늙은이 같은,
황량한 높은 산에 군락을 이룬 억새들.
그 모습을 보러 난 억새평전을 가려한다.
시기적으로 조금 이른 감이 없지는 않다.
어쩌랴.
산내음이 아니면 내 혼자서는 갈 수 없으니.
 
늦 여름이면 은색으로 반짝이는 매초롬한 깃을 맑은 햇살 속에 수줍게 내밀지.
한 가을의 선선하고 카랑한 빠삭이는 햇살에 매초롬한 깃 내 말려 햇솜처럼 가볍게.
기러기 북녘으로 몰려가는 늦가을의 찬바람에 온 몸 내 맡겨 멀리 멀리 씨앗 날려 보내지.
 
이 억새를 보러 천황산과 재약산엘 가야한다.
작년 신불산 억새 평전을 잊을 수 없어 꼭 가야한다.
산행하기 좋은 계절임을 실감하듯 만차이다.
갑자기 못 오신 님들이 없었으면 자리가 부족해 산내음 돌쇠 두어분은 바닥에 앉아 갈 뻔했다.
표충사 입장료 때문에 산행비가 오천 원 추가 되었는데,
음력 구월구일에 있는 천도제로 입장료가 오늘만 무료란다.
영령들이여 부디 내생의 좋은 곳에 환생 하소서~~~
선인장님 말마따나 덕 많은 금송회장님 말년에 회원들에게
한 턱 쏘라는 부처님 가피란다.


 


























천황산을 향해 오르는 길, 계곡이지만 가뭄으로 거의 물을 볼 수가 없다.
날씨는 거의 한 여름에 버금갈 만큼 덥다.
돌너덜길은 왜 그리 긴지...
오르막 내리막이 없는 무한정의 오르막길...
안 그래도 오르막이 힘든 후미 팀은 정말 죽을 맛이다.
여고 동창 한울님이 함께 했는데....
나라도 금송회장님과 도올님의 힘을 덜고자 장끼님을 재촉해 앞서서 올라간다.
장끼님이 벌써 지치는지 쉬는 텀이 짧아진다.
난 오늘 왜 이리 힘이 안 들고 잘 올라가지지?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어 충분한 수면을 취한
효과인지 그 동안의 구력인지 그나마 다행이다.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해 힘을 얻은 우리는 천황산까지는 무난히 올라갔다.
작은 관목들 사이로 펼쳐지는 억새밭....
날이 흐린 건지 높은 구름 때문인지 멀리 조망을 할 수가 없음이 아쉽다.
후미 사진사가 없어 이 멋진 곳을 눈에만 담아야 했다.
그레이스님과 갖가지 야생화에 오랜 눈길 주며, 어루만지며, 오르막길의 어려움을 위로하며,
작은 야호도 주고받으며 천황산 표지석 근처에 오니,
죽었다던 오라비 만나듯 반갑게도 천산님이 사진을 찍고 계셨다.
야생화 찍으시느라 늦어지는 바람에 후미 팀도 천황산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이 또한 복이 아니랴?
까마귀가 妖하니 날카로운 바위 끝에 앉아 있는 모습이 괴기스럽다.
역사적으로 태양 속에 산다는 발이 셋 달린 까마귀 삼족오는 우리 조상들의 숭배 대상이었고,
태양을 상징하기도 한다지...
장끼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날개를 활짝 펴고 낮게 천천히 하늘을 맴도는 까마귀 모습이
마치 축제 때 날려 보내는 비둘기 모습 같다.
역시 만사는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곳에서 중간 팀과 합류하면서 오르막의 힘듦을 잊어버리고 넓게 펼쳐진 억새밭 풍경에
감탄을 연발한다.
이 높은 곳에 이런 환상적인 광경이...
사자평 휴게소에서 동동주라도 한 잔 하면서 오래 억새들과 노닐고 싶었다.
















하산 시간을 고려해 후미는 이곳에서 하산을 하고,
나머지는 재약산을 향해서 출발했다.




지난 설악산 무박 산행에서 대청봉과 봉정암 사리탑을 놓친 것이 아쉬워 조금 힘들지만
중간 팀에 합류하여 재약산으로 향했다.
장끼님이 걱정이 되었지만, 무리하게 욕심을 내 보면서 은근히 걱정은 된다.
오르막길에서도 심하게 닦달하여 미안한 맘이다.
우리는 부부인데도 이러한데, 후미에서 느림보들과 늘 함께 하시는 금송님과 도올님의 속 탐을 절감하겠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산내음에 처음 와서 매 산행마다 빈혈로 퍼졌던 나와 늘 함께 했던 인자무적님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 세분들이야말로 펄펄 나는 분들인데....
내가 산내음 이외의 어디에도 눈길마저 줄 수 없는 이유이고,
내 어떤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다면 기꺼이 내 줄 수 있는 이유이다.
하긴 반디부회장님 말을 빌리자면 ‘다른 곳에서는 받아 줄 곳도 없음이야.’
재약산 가는 길에 비스듬한 칼바위 능선. 천산님과 이쁜 별하님이 올라 사진을 찍는다.
앞서 가시던 도올님과 청실님이 사뿐히 올라가기에 나도 엉거주춤 다가가니,
뒤에 따라 오시던 장끼님이 크게 나무란다.
위험한 곳에 얼씬거리니 걱정이 되나보다.
도올님의 도움으로 엉금엉금 기어올라 빼꼼히 내다보니, 도올님 말대로 마치 창문으로 내다 보는 풍경이다.
이 좋은 곳을 왜 못 오르게 하는지... 이 또한 지극한 사랑임을 왜 모르랴...
또 다시 쥐약인 오르막을 지나니 재약산 정상이네.
선두팀과 합류한 기쁨에 다비대장님 팔을 끼고, 기념사진을 남긴다.
보따리 속 먹거리도 풀어 먹으면서, 서로 기뻐 툭툭 치며 정담도 나누고, 우스개로 크게 웃어본다.
이제는 본격적 하산 길.
선인장님은 소리꾼님 내 버리고 이미 저 아래로 내 달린다. 역시 하산 길 여왕이여!
전에는 내가 여왕이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물러나야 하나...
두 산을 얼결에 정복하고, 아무런 사고 없이 안전하게 오순도순 얘기 나누며 흙사랑님, 최선님 뒤를 따라서,
인자무적님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노래를 들으며 내려오는 길은 정말로 행복했다.




뒤에 처진 어처구니 짝꿍님이 걱정이 된다.
멋쟁이 흑기사 세분이 함께 하니 쓸데없는 기우련만...
설악산에서도 큰일을 하신 세분. 오르막에서부터 줄곧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맞아, 친구란 저런 모습이어야 하는 거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아~~~ 아름다운 사람들이구나...






마지막 폭포. 위에서 굴러온 바위인지, 하늘에서 떨어뜨린 바위인지, 폭포 중간을 막아 흠이었지만,


긴 폭포 앞에서 후미를 지둘려 기념 촬영을 하고,
랜턴을 준비하지 못한 토마토와 서둘러 하산하라는 도올님 명을 따라
힘들어하는 어처구니 짝꿍님을 뒤에 두고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했다.


어두운 숲길이 조금은 무서웠지만, 뒤에 따라 내려 올 청실님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몸과 맘으로 큰 힘이 되어 주면서 함께 가는 겁니다.


산내음이니까요.


 
너는 기도할 때 눈을 감지만
나는 기도할 때 몸을 흔든다
너는 기도할 때 눈을 감지만
나는 기도할 때 몸을 흔든다
빛이 그림자를 안고 있듯이
밤이 새벽을 열어 주듯이
그렇게 나도. 그렇게 나도
눈부신 것 하나쯤. 눈부신 것 하나쯤
지니고 싶어. 지니고 싶어
바람에 흔들리며
바람에 흔들리며
기도한다 온 몸으로
기도한다 온 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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