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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지/경상도

진해 시루봉 산행 2010. 4. 10.

by 장끼와 까투리 2010. 4. 12.

 

 

봄 산에 피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정말로 몰랐네.

봄 산에 지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생각을 못 했네.

 

 만약에 누군가가 내게 다시 세월을 돌려 준다 하더라도

웃으면서 조용하게 싫다고 말을 할테야.

다시 또 알 수 없는 안개빛 같은 젊음이라면

생각만 해도 힘이 드니까. 나이 든 지금이 더 좋아

것이 인생이란 비밀.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봄이면 산에 들에 피는 꽃들이 그리도 고운 줄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정말로 몰랐네.

내 인생의 꽃이 다 피고 또 지고 난, 그 후에야

비로소 내 마음에 꽃 하나 들어 와 피어 있었네.

 

 나란히 앉아서 아무 말 하지 않고 고개 끄떡이며

내 마음을 알아 주는 친구 하나 하나 있다면

나란히 앉아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지는 해 함께 바라봐 줄

친구만 있다면 더 이상 다른 건 바랄게 없어. 

그것이 인생이란 비밀.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맑은 목소리로 잔잔하게, 애잔하지만 전혀 서글프지 않게

읊조리듯 부르는 양희은님의 노래 <인생의 선물>

나는 지금 이 노래를 들으면서 어제 다녀온 진해를 다시 한 번 그려 본다.

 

 서해에서 우리 군함(천안함)이 침몰하는 불행한 사고만 없었더라면

난생 처음으로 가 본 진해와 그 아름다운 풍경을 가슴 터지게 만끽했을텐데...

그리 생각해서 그런가 진해 하늘은 회색이었다.

우리들 미안한 마음을 날씨가 대신 해 주는 것 같아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가족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벚꽃을 보러 가는 진해 웅산 시루봉과 천자봉이라니 산행이 많이 힘들진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지난 주에 다녀온 주작산보다 더 다리가 아프다.

아직 덜 여문 계집애의 유두같은 시루바위를 바라보면서 저기가 고지려니 했는데

천자봉은 저 바다를 향해 쑥 삐져 나가서 나를 약 올리고 있었다.

진해 웅산은 결코 도시 주변의 만만한 산보용 산이 아니었다.

 

시커먼 얼굴에 딱 벌어진 갑빠만 보면 겁 먹게 생긴 우리 심재일이지만

눈빛이 개구쟁이처럼 천진난만하고 목소리는 느릿하고 순해서 언제 봐도 믿음직스럽다.

세상이 다 부셔져도 재일이의 속리산 고속 산내음 버스는 멀쩡할 것 같다.

언제나 멋재일이가 내려준 곳(안민고개)에서 산행은 시작이 된다.

복잡한 와중에도 산내음 사진작가들은 우리들과 멋진 진해 시가지를 담기에 바쁘다.

시내와 앞바다를 한 눈에 내려다 보면서 아스팔트를 따라 올라가니

얼떨결대장이 기다려 오른쪽 산 길로 올라가라고 안내를 한다.

선한 눈매와 다소곳한 모습 속 어디에 산에 대한 열정이 숨어있는지...

진정한 산사나이며 아름다운 사람이다. 참 매력있는 인생 후배다.

 

잠깐 올라왔을 뿐인데

산 아래 도시를 둘러싼 바다와 크고 작은 섬들

그 도시의 대낮을 더 환하게 밝히는 일렁이는 꽃등불이

무심한 산객의 눈길을 잡는고나!

 

 조금 더 걸음을 옮겼을 뿐인데

산자락 흘러내리는 진녹의 편백나무 치마폭은

애꿎은 여인의 옷깃을 잡는고나! 

 

 어쩌나...갈 길은 먼데

산길 선분홍 진달래가 기어코 발길을 잡는구나!

 

 에라!~

오늘 다 못 가면 내일 가지...

사진이라도 박고 가자.ㅎㅎㅎ

 

 바다와 도시와 진달래와 편백나무 숲을 배경으로 너도나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산내음 님들 표정이 환하고 밝은 것은 사진작가님들 덕일게다.

사진 찍으면서 찡그리거나 무표정한 사람은 없을테니...

그래서 산행 사진만 보면 산내음에 처음 온 사람을 금방 구별할 수 있지.

 

저기 쬐끄맣던 젖꼭지가 점점 더 커지고 있네.

아모리 눈길, 옷깃, 발길을 잡아도 나는 시루봉을 향해 가고 있음이야.ㅎ

 

어쩌나...    사고가 났구나.

우회로가 옆에 있었는데...

석화회장 말대로 거대한 바위가 인간을 넘어뜨리진 않지.

아주 작은 돌뿌리에 인간은 자빠진다.

참 침착한 부부인데...

더 많이 상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겨야지.

 

갑자기 하늘이 더 어두워지더니 아주 가는 비가 오신다.

산행 경험이 많은 현명한 산우리와 리아부회장이 비가 더 굵어지기 전에 점심을 먹자네.

후미대장을 맡은 팬더님과 여유만만팀이 식사를 마치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비가 멎네.

늘보표 커피를 나눠 브라보 액션까지 취해가며 잠시 숨을 고른다.

 

 신선님과 함께 계단을 쉬엄쉬엄 오르며 뒤 돌아 보면

느릿느릿 딴청을 부려가며 팬더가 어슬렁 거린다.ㅎㅎㅎ

 

 

 

와우!~ 어느새 쬐끄맣던 것이 대빵 커졌네.

시루를 엎어 놓은 모양이라더니 정말이네.

이 도시 어디서나 올려다 보이니 도시의 상징이 될만도 하겠다.

그런데 이 바위가 왜적들이 침입할 때는 항해 지표가 되었단다.

우뚝한 것은 언제나 그늘을 가지게 마련. 더 우뚝할 수록 그늘은 더 깊어지게 마련이지.

시루봉 곁에 서서 쓸데없는 시름에 젖어 보는구나.

시루가 조금 더 봉긋한 산 봉우리에 엎어졌더라면 좀 더 육감적이었을긴데...ㅎ

 

아래 <해병혼>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내 생각엔 이 건 분명 건장한 사내의 심장이 펄떡이는 왼쪽 가슴팍 젖꼭지일 것이다.

진해가 해군의 도시인 것은 바다와 접해있기도 하지만

이런 풍수적 연유도 있지 않을까? ㅎㅎㅎ

 

 지그재그 계단을 내려서며 뒤 돌아 보는 시루봉.

그런 듯 봐서 그런가 흐린 하늘을 이고 우뚝 선 모습이 자못 침통해 보이네.

진해를 떠날 때까지 그대를 바라 보겠습니다.

그리고 진해를 떠나서도 늘 그대를 기억하겠습니다.

그대들을...

 

 산우리야!~

우리 어디까지 가야 하는겨?

쩌~기 통신탑이 있는 곳까지유~

에구... 언냐 죽겠다...

 

 그냥 걸었다. 힘을 아끼려 높은 곳은 피해 무조건 우회를 했다.

천자봉까지 가야하니께.

그래도 사진은 찍어가면서.ㅎㅎㅎ

아봉님이 가져온 사과와 영양과자로 비상 급유를 해가면서리...

발 아래만 보고 입 꾹 다물고 걷다보니 천자봉에 도착!!!

드디어 완주!!!

 

마지막으로 천자봉에 서서 앞에 보이는 거대한 조선소를 바라다 본다.

그저 쇳덩이로 만들어진 것이 바다 위를 종횡무진 하겠지.

그 쇳덩이 속에 든 바다를 향한 열정이 집약된 곳에서 뿜어나는 힘으로.

부실한 뼈와 살로 된 내 허약한 몸뚱이가 온 산을 넘나듬도 바로 이 열정 때문이지.

 

하루 이틀이면 질 봄꽃에 이다지 환호하는 나는.

내 남은 인생. 열광할 것이다.

산내음을 따라 댕기면서...

신선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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