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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것 저 것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by 장끼와 까투리 2009. 6. 26.

 

지난 5월 29일부터 이달 28일까지 이 연극을 공연한다는 이메일이 들어 왔을 때부터

마치 꼭 해야 할 일을 미루어 두고 있는 듯 초조한 날들이었다.

누가 처음 만들어낸 말인지는 모르지만... 나도 목탁mania(폐인)가 된건가? ㅎㅎㅎ

 

어지간한 것은 한두번으로 충분하거나 질릴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이 연극은 또 봐도 새롭다.

아마 배우들이 심각하게 또는 코믹하게 토해내는 대사들이 불교적인 심오한 뜻을 담고 있어

한두번 듣는 것으로는 얼른 머리 속에 들어오지도 않지만, 그 의미를 새기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리라.

이번이 다섯번째인데도 여전히 첨 들어보는 대사가 들린다.

일부러 앞자리에서 배우들의 제스츄어보다는 대사를 집중해서 들었다.

 

한 미대 교수가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아내가 윤간당하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는 불가항력의 그야말로 사고였다.

하지만 그는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내를 버려두고 출가를 하게된다.

긴 세월 참선과 묵언을 통해 도법이라는 법명을 받았고, 속세에서 미대 교수였던 전력을 살려 불상 조각도 하지만

아내에 대한 복잡한 심적 갈등은 여전히 다스릴 수가 없다.

 

등장하는 망령의 겉모습은 바로 도법의 심연 깊숙이 내재된 본래 모습이리라.

겉으론 아름답고, 지성적이고 의연한 모습이지만 그 내부에 도사린 추악한 모습과 편협함이

본래 우리들 인간 모습이 아닌가싶다.

거죽은 그슬려 남들이 보기에 혐오스럽고 추한 형상이지만,

망령의 소리는  도법으로 대표되는  이율배반적이고 모순 투성이인 우리들의 폐부를 찔러대는 비수와 같았다.

 

도법은 추함을 뛰어 넘어 아름다움을 추구하려고 종교적 수행과 예술에 몰두했지만 결국 마음 한자락 뒤집질 못해

망령에 시달리고, 결국엔 자신의 추함을 보지 못한 두 눈을 찌른다.

아내의 사고를 상처와 아픔의 대상으로 극복하려한 도법에게 망령은 난도질하듯 미추를 보는 도법의 눈(마음)에 일격을 가한다.

자네의 외부를 보지 말아야 할 때가 왔어. 보려고 하지 말어.

본질을 볼 줄 모르는 눈은 있어도 없는 것이 아닌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완성자, 겉으로 나타나는 아름다움과 추함은 다만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허상에 불과하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바닷가 조약돌을 아름답고, 둥글게 다듬은 것은 부드러운 물결. 싸우려들면 둘 다 파멸하고 말지.

 

대본을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읽어서 머리 속에 넣는다고?

ㅎ 그러느니, 연극을 몇번 더 보면서 마음 안에 담으리라.

길창규님이 분장없이, 과장되지 않은 목소리로 방장스님 역을 연기하는 날까지 이 연극을 보고 싶다.

ㅎㅎㅎ 에구... 그때까지 보청기 끼고 불편한 객석 의자에 앉아 <목탁>을 보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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