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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것 저 것

<퍼옴>유행에 대하여.......마광수교수님 에세이에서.

by 장끼와 까투리 2009. 10. 15.

 

유행에 대하여 .................. 마광수

 

'유행'이란 문화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이다.

예컨대 문학의 경우엔 당대를 풍미하는 문학관이 있어 이를 '문예사조'라고 부르고,

철학 역시 시대마다 유행하는 세계관이 있어 이를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유행에 가장 민감한 분야는 역시 패션이나 헤어스타일, 또는 화장같은 것일 것이다.

지난 1970년대 초 우리나라에 불어닥쳤던 여성의 미니스커트 열풍과 남성의 장발 열풍은

지금까지도 전설적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요즘은 어떤 옷이나 헤어스타일이 아무리 유행한다고 해봤자 일부 젊은이들한테나 해당되는

사항인데, 그때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미니스커트와 장발을 좋아했다.

특히 미니스커트는 다리가 예쁘건 밉건, 젊은 여자건 늙은 여자건,

다들 마치 악을 쓰듯 입고 다녔다는 점에서 '유행심리'의 무서움을 보여준 대표적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유행심리는 대체로 일반대중들의 '집단무의식'을 반영한다.

 

여자의 스커트 길이로 경제상태를 진단하는 학자들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경기가 침체될 때는 스커트 길이가 길어지고, 경기가 호황일때는

스커트 길이가 짧아진다는 이론이 그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경기침체땐 옷감을 절약하기 위해서라도 짧은 스커트가 유행할 것 같은데,

실제는 정 반대다.

유행은 이성적 계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의식적 발산욕구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문화적 담론의 유행역시 경제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성(性)이나 자유 등에 관한 담론이 유행한다.

그러나 경기가 나쁠 때는 민족이나 도덕 등에 관련된 담론이 유행한다.

우리나라에서 과거에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계속 도덕에 관한 담론이나 민족 주체성 확립 등에

대한 담론이 유행한 것은 역시 대중들의 어두운 심리상태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신세대 문인들 일부가 자유로운 성이나 동성애 등에 관한 담론에 집착했지만,

그것이 전국민적으로까지 확산되지는 못했다.

 

내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내고 화제와 구설수의 도마에 오른 것은

어쨌든 책이 많이 팔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책이 나왔던 1989년은 88 올림픽 직후라

그런대로 경기가 좋을 때였다. 그런데 1992~93년쯤부터는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음란물'  단속이 심해졌다.

최근에도 미네르바가 쓴 인터넷 글들을 본보기 표적수사로 사법처리하려고 했는데,

이는  극도의 경기불안 심리가 검찰의 칼날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말세론의 유행이나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의 유행 같은 것은 경제상태에 따른

대중들의 집단무의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대중들의 보편적인 성적(性的) 콤플렉스와 연관돼 있다.

 

성의 억압이 심한 사회에서는 말세론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신비주의 사상이 유행하기 쉽고,

성의 억압이 적은 사회에서는 말세론뿐만 아니라 갖가지 종교산업이 맥을 못춘다.

우리나라가 교회 숫자에 있어 세계 제1이고 또 신비주의 종파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한국이 특히 집단적 성억압이 심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경기가 좋은 때라 할지라도, 성이나 자유에 대한 담론이 유행하긴 하되

곧바로 꽉막힌 도덕주의자들에 의해 철퇴를 맞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가장 좋은 사회는 어떤 분야에서든지 특별한 유행이 없는 사회다.

 

그런 사회를 한마디로 말해 다원주의(多元主義)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데,

말하자면 국민개개인의 개성이나 취향이 각기 다른 사회를 가리킨다.

아니, 개성이나 취향이 각기 다른 사회라기보다는, 각자가 특별한 개성을 마음것 표출해도

전혀 제재를 받지 않는 사회라는 말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창조적인 사람이라면 유행을 쫓기보다 유행을 선도해나가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창조적인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는 획일적인 유행이 존재할 수 없다.

 

듣기에 프랑스에서는 똑같은 옷을 입은 여자가 길에서 마주쳤을 경우,

두 여자는 다음부터 다시는 그 옷을 입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똑같은 옷을 입은 여자들이 너무나 많다.

남자의 경우에도 그런데, 가게에서 파는 넥타이를 보면 그때 유행하는 스타일만 진열돼 있다.

나는 폭이 좁은 넥타이를 좋아하는데, 요즘은 아무리 구할래도 구할 수가 없어

옛날에 사두었던 헌 것만 매고 있다. 한번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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