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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지/전라도

완주 천등산 산행기(2007. 12. 08)

by 장끼와 까투리 2014. 6. 24.

 

 

천등산天燈山 ,707m)은 온통 큰 덩치의 골산으로 이루어졌고

계곡에는 절벽과 폭포, 그리고 바위 사이를 뚫고 나오는 소나무들로 하나의 거대한 산수화가 된다.

여름엔 시원한 폭포수와 함께 용계천, 옥계천 계곡이 피서지로 인기가 많고

가을엔 암봉과 암벽 사이의 단풍으로,

겨울엔 흰 눈에 덮인 거대한 은빛 바위와 계곡에 활짝 핀 설화 등으로

선경을 이루어 길손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산행코스 : 장성리~빈덕바위~감투봉~천등산~660봉~산죽~405봉~찬등산쉼터

 

 

 

 

 

산행 전 날은 부산하다.

배낭에 넣어 가지고 갈 것들을 거실에 수북하게 쌓아 놓는다.

장끼님이 쓰윽 훑어보고 점검을 한다.

나는 꼼꼼히 점검해도 빼 먹는 게 있는데, 장끼님은 쓰윽 보고도 잘도 챙긴다.

아침에 입고 나갈 옷가지를 입는 순서대로 늘어놓은 후에,

장끼님과 까투리 휴대폰에 알람을 5분 간격으로 저장한다.

 

혼자 가는 날은 왠지 불안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집안을 들 쑤셔 놓는다.

도시락 챙기고, 식수 챙기고, 간단히 밥도 먹고, 등산복 갖추어 입고,

현관으로 나서는데, 장끼님이 한마디 한다.

“ 흑진주님 차에 태워 함께 가는 것 잊지 마!  ”

 

아이쿠, 그냥 갈 뻔 했다.

 

버스에 오르면서 반가운 님들과 눈인사, 손인사, 입인사, 몸인사 부산하게 나눈다.

평소에 같이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는 진지한 기쁨님과 같이 앉아 가면서,

속으로 이 양반이 어떤 분인지 나름 분석을 해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날 뭘 하셨는지 계속 주무시는 바람에 한 쪽 어깨만 빌려 주었을 뿐

별 소득이 없었다.

ㅎ ㅎ ㅎ 버스 옆자리에 앉은 남성한테 무시당해 보기는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차타는 시간이 짧다고 해서 멀미약을 안 챙겼더니, 

길이 구불구불해서인지 멀미가 난다.

일년 가까이 버스를 타면 이놈의 위가 단련도 됐으련만,

아무튼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다.

 

어딘지 버스가 도착하고, 배낭을 메고, 산지팡이를 적당한 길이로 조절하고,

앞 사람을 따라 간다.

아직도 어질어질하다.

찬 공기를 마시면서 조금 걸으니, ㅎ ㅎ ㅎ 이제야 정신이 든다.

늙은 감나무에 까치밥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인심도 좋다.

키가 크신 해돋이님과 천종님이 장대를 던져 보지만, 택도 없다.

시원하게 한개 먹고 싶어 침을 꼴깍 삼켜 보지만, 어림도 없다.

 

 

앞에 가는 님들을 따라서 어영부영 걷다 보니,

금송님이 씨익 웃으시면서 한 말씀 하신다.

“ 후미는 이미 정해졌네. ”

오르막길이 심상치가 않다.

힘들지 않을 거라고 미리 만만하게 봤던 게 오산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나름대로 숨과 힘을 조절해 본다.

주변을 조망하고, 산을 완상할 여유가 아직은 없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야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아마 그런 경지에 오르기도 전에 건강상 산행을 멈춰야할지도 모르겠다.

 

 

 

 

 

 

 

 

가까이 보이는 산이 대둔산이란다.

지금도 대학 축제에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대학 다닐 때(70년대 중반쯤)는 축제의 일환으로 등반대회라는 게 있었다.

등수 안에 들어서 상금을 받으면, 밤새 생맥주 파티를 했었다.

당시에 생맥주는 가난한 대학생들의 로망이었다.

허겁지겁 산길을 내달렸을 뿐이었다.

그러니, 아무 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그랬을지라도 당시에 나와 그들은 얼마나 자신감에 차 있고, 패기 넘치고, 생기발랄했던가!

지난 세월이 꿈결 같다.

 

 

자신감과 패기와 방자한 혈기만으로도 살아가는 일이 어렵지 않았던 시절을 지나

점차 모든 행동과 말에 조심성과 책임감이 무게로 느껴지는 나이가 되어서야

지금 깨달아 알게 된 것들을 10년 전에만 알았어도........

내 삶의 깊이와 폭이 지금보다는 훨씬 깊고, 넓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회한이 든다.

지난 11월 초쯤 도솔봉 산행을 하면서 도올님과 비슷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장끼님이 산내음에서 몇 번 산행을 함께 해 본 후에 이런 말을 하더라고.

자기가 사십대에 이런 좋은 산악회를 알았더라면

‘ 삶이 지금보다 많이 풍요로워지고, 심신도 훨씬 건강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자무적, 도올, 다비, 금송, 나뭇꾼, 호세, 팬더 등이 부럽다고.

(다른 분들도 모두요. 장끼님이 알고 있는 사람이 적어서.)

산내음은 산행만 하는 다른 산악회와 분명 다른 점이 있다.

즐탁동기님이 한줄 메모에 쓰셨듯이 각양각색의 구성원들이지만

일주일에 한번 산행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감동이 있는 곳이다.

이렇게 감동을 주는 산악회로 만들어 오신 모든 님들께 존경을 보낸다.

쓰다보니 산행기가 애초에 내가 의도했던 방향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빠져 버린 것 같다.

말하다가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을 잊어버리듯이,

글을 쓰다가 쓰려던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무상한 세월 탓이라오.

짧은 산행을 해서인지, 몸이 건방을 떨더니, 마음도 건방을 떠는 것 같습니다.

산행거리가 짧은 천등산 탓이라오.

 

아무튼 저녁식사까지 맛있게 먹고 보람찬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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