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은 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특별한 사연이 있는 곳이다.
이미 고인이 되신 어머니께서 생전에 해남의 대흥사와 두륜산을 다녀오신 후에
매우 감탄하시며 그 곳 풍광이 아름다우니 기회가 되면 꼭 가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음... 어머니 모습이 떠올라 잠시 숙연해진다...
또 한 가지는 소백산맥 남단에 불쑥 솟은 덕룡산, 주작산, 두륜산, 끝자락 달마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에서 유독 두륜산만을 빼놓았기에 항상 아쉬움이 있었다.
오늘도 감동적이고 멋있는 장면을 연출시켜줄 좋은 날씨를 고대하며
같은 아파트에 사는 금초, 은초님 부부와 솔밭공원에서 차를 탄다.
이미 다녀온 금초님이 늦게 신청해서 함께 가준다니 참 든든하다.
내가 본 바로는 덕룡산, 주작산, 달마산이 어느 산 못지않게 암릉, 경관, 조망이 빼어난 데
왜 두륜산에 비해 유명도에서 한참 미치지 못 하는 것일까?
인자무적 전 회장 왈
두륜(頭輪)은 백두산(白頭山)과 중국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곤륜산(崑崙山:산의 조상)에서 연유하여 두륜산(頭崙山)이었다가
후에 두륜산(頭輪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주변 명산을 다스리는 산이라니 한층 기대가 간다.
쇠노재 들머리에 도착하니 날씨는 포근해 다행이지만 구름과 운무로 조망이 아쉽다.
진행하면서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성큼 나타난 거대한 암릉이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위엄과 근엄, 성스러움까지...
백여 회에 가까운 산행을 했지만 여전히 힘들고 두려움이 앞선다.
오늘따라 산 오르기가 여간 힘들지 않고 종아리가 완전히 풀려 초반부터 고전의 연속이다.
가파른 암반 코스를 지나 겨우 위봉에 올라 투구봉을 바라보니 아름답기 그지없다.
시원한 산바람에 땀을 닦으며 뒤 돌아 보니, 저 멀리 파란 바다위에 크고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해안을 감싼다.
전형적인 다도해의 풍광은 무척 다정스럽고 포근해서
우리나라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친근감이 있는 한 폭의 동양화다.
산 아래 철 따라 녹색과 황금색 그리고 하얀색으로 변하는 바둑판처럼 잘 다듬어진
너른 들녘에 띄엄띄엄 보이는 농촌가옥, 해변의 어촌가옥들이 마냥 평화롭다.
회색 구름이 차일 친 하늘. 한 쪽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뭉게구름이 상서로웁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니... 밥에 시원한 물을 말아 먹으니 훌훌 잘도 넘어간다.
오늘도 까투리는 서너 숟가락 먹는 둥 마는 둥이다.
뱃속도 채우고, 힘든 고비는 지났다는 안도감으로 발걸음이 가벼워 두륜봉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카르멘님과 은초님이 무적님, 호세님, 금초님 등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건너편 바위 절벽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올라가기 어려운 위험한 구간인 것 같다.
약골 까투리와 팔이 불편한 글라라 부회장님이 걱정이다. 나두 걱정이고...
회원들의 안전을 위해 기다려 준 인자무적님과 맨발님, 도솔봉까지 알바하느라고 후미에
합류한 백두산님과 밀레님, 금초님, 회장님, 회장님 친구 등 후미에서 함께 간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겨우 통과했다.
정말 고마웠고, 이것이 바로 산내음의 오랜 전통이고 정서라는 것을 다시 느낀다.
천신만고 끝에 두륜봉 상징인 구름다리를 통과하는 철 계단을 올라 정상에 도착해
사방을 내려다보니 전율이 인다. 성취감과 직전의 아찔함으로...
걸출한 경관에 한참 동안 넋이 빠져있다 한기에 정신을 차린다,
두륜봉 인증 사진을 남긴 후 두륜봉을 애초 목표로 삼았기에 더 이상의 미련을 떨쳐버리고
만일재에서 천년수로 향하는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지나왔던 암릉과는 어울리지 않게 너르고 평평한 만일재는 왠지 모르게
신비스럽고 성스러운 성지와 같은 느낌이 든다.
둥그렇게 열린 만일재 프레임 안에 멀리 앞 바다와 섬들, 가까이 들녘과 집들이 고즈넉하고
턱! 올려다 보이는 두륜산(가련봉)의 형상은 웅대하고 위엄이 넘쳐
그 앞에 절로 무릎을 꿇을 듯한 겸손한 마음이 든다.
때 맞춰 잠깐 구름을 헤친 석양에 빛나는 봉우리가 경외감마저 일게 한다.
과연 명성대로 이름값을 톡톡히 할 뿐만 아니라, 주변 명산을 거느릴 자격이 충분하다.
만일암 터의 오층석탑과 수령이 천년이나 된다는 노거수 느티나무 천년수를 보니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지...
≪ 대흥사(大興寺)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라에 위치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이며 대둔사라고도 한다.
창건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신라말기로 추정된다.
대웅전은 1665년부터 1667년에 걸쳐 심수가 중창했으며, 현판은 조선 후기의 명필 이광사가 썼다.
대웅전 앞 백설당에는 김정희가 쓴 '무량수전'이란 편액이 있고,
동쪽 응진전 앞에는 대흥사응진전전3층석탑(보물 제320호)이 있다
하산 길은 비교적 완만해서 산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피곤한지 모르게
어느새 대흥사에 도착했다.
어머니께 들어서 상상하던 고색창연한 고찰과 주변의 우거진 동백나무 숲 대신
현대식 사찰건물과 넓은 주차장은 기대를 무참히 저버렸고 대단히 실망스럽다.
힘들었던 산행의 성취감과 즐거운 추억을 간직한 채 차에 올라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니
미루었던 숙제가 풀린 것 같아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한없이 상쾌하고 행복하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눈을 감고 잠시 명상에 잠겨본다.
오늘 하루도 나는 최선을 다 했는가?
하루가 지나면 어느새 1년이 되고 또 세월이 지나 100년이 되면 우리네 일생이 된다.
오늘 하루는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중요한 순간으로,
최선을 다한 오늘 하루는 보람되고 가치 있는 과거가 되어 뿌듯함으로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 이며, 다가올 미래의 밝은 희망과 행복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지금 이순간은 일생에 한번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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