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초록의 이름으로>라는 카페에서 가져 왔습니다.
가을의 소원
안 도 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 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안도현의 「가을의 소원」을 배달하며
문학 집배원 나희덕
벌써 바람에서 마른 풀냄새 같은 게 묻어오는 듯합니다.
봄과 여름이 성장을 향해 있다면,
가을은 생명의 포물선이 한풀 꺾이면서 소멸을 향해 기우는 계절이지요.
그래서인지 시인의 소원 또한 단출하고 담박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소원들 중 어느 것 하나 손쉽게 이룰 수 있는 게 없군요.
도시에 살면서 온전한 적막과 게으름은 꿈도 꾸기 어려워졌고,
소낙비를 흠씬 맞거나 혼자 울어본 지도 언제였는지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침묵할 줄만 안다면 그는 충분히 아는 것”이라는 외국 속담처럼,
가을은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침내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기에
더없이 좋은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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