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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것 저 것

산내음 가시나무님 글과 심술쟁이님 사진.

by 장끼와 까투리 2010. 3. 11.

 

 

 

 

 

 

 입춘 지나서 내리는 눈

 

              가시나무 정정숙

 

입춘 지난지가 한참인데요.

잠결에 누가 온 듯싶었는데요.

창이 버언하게 안개등을 켜고

눈이 오네요.

 

아무 조짐도 없더니

못 다 한 이야기 풀어놓듯

사락사락 끝도 없이 내리네요.

 

하얀 옥양목 이불 같은 눈이

초라한 이들이 누운 지붕을 다독여줍니다.

고달픈 발자욱이 잠든 골목길도 차근차근

빈 데 하나 없이 여며 줍니다.

 

간간히 바람이나 눈길에 나서는 밤

건너 산이 그 눈을 다 맞고 섰습니다.

나도 그냥 잠들 수 없어 생각에 묻힙니다.

 

철없던 그때 제풀에 지쳐

돌아온 자식 이부자리 펴주고

말없이 방문 나서는 당신 뒷모습 같이

아무 생각 하지 말고 푹 쉬기나 하라고

속으로 지껄이던 당신 눈빛같이

눈이. 눈이. 오시는군요.

 

아, 그 눈길을,

팔십 리 길을,

그 쓸쓸한 길을

되짚어 소리 없이 다녀가신

무명 적삼의 당신

 

후기: 몇 몇 해 전에도 입춘지나 엄청나게 눈이 왔드랬어요.

한 밤에 깨어 내리는 눈을 따라 걸어본 자죽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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