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지나서 내리는 눈
가시나무 정정숙
입춘 지난지가 한참인데요.
잠결에 누가 온 듯싶었는데요.
창이 버언하게 안개등을 켜고
눈이 오네요.
아무 조짐도 없더니
못 다 한 이야기 풀어놓듯
사락사락 끝도 없이 내리네요.
하얀 옥양목 이불 같은 눈이
초라한 이들이 누운 지붕을 다독여줍니다.
고달픈 발자욱이 잠든 골목길도 차근차근
빈 데 하나 없이 여며 줍니다.
간간히 바람이나 눈길에 나서는 밤
건너 산이 그 눈을 다 맞고 섰습니다.
나도 그냥 잠들 수 없어 생각에 묻힙니다.
철없던 그때 제풀에 지쳐
돌아온 자식 이부자리 펴주고
말없이 방문 나서는 당신 뒷모습 같이
아무 생각 하지 말고 푹 쉬기나 하라고
속으로 지껄이던 당신 눈빛같이
눈이. 눈이. 오시는군요.
아, 그 눈길을,
팔십 리 길을,
그 쓸쓸한 길을
되짚어 소리 없이 다녀가신
무명 적삼의 당신
후기: 몇 몇 해 전에도 입춘지나 엄청나게 눈이 왔드랬어요.
한 밤에 깨어 내리는 눈을 따라 걸어본 자죽이랍니다.
'이 것 저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1997)" (0) | 2010.04.30 |
---|---|
우리는 너무 세속에 묻혀 있다 --- William Wordsworth (김기태 譯) (0) | 2010.04.09 |
라만차의 사람 돈키호테 (0) | 2010.04.07 |
[스크랩] 작은로망스,예스터데이,아리랑변주.클래식기타연주~~호세~~ (0) | 2010.03.25 |
4.5와 5 (0) | 2010.02.20 |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서울 나들이를...ㅎㅎㅎ (0) | 2010.02.04 |
추억 (0) | 2010.02.02 |
[스크랩] 신춘문예 시 당선작 (동아 한국 문화 경향 조선 중앙일보) (0) | 2010.01.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