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를 보던 까투리가 나를 부른다.
다음 산행지가 설악산 공룡능선으로 변경되었네요!
우린 포기해야겠어요........
매 산행마다 후미 꼴찌를 못 면해, 산내음 고문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터라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자!’는 뜻이 서로 통하여
산행을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인자무적 전회장이 쪽지로 공룡능선 등반로의 상태와
산행 시 배낭 꾸리기와 산행 전 몸 컨디션 조절 요령 등을 상세히 보내주면서
이번 산행에 동참할 것을 적극 권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까투리의 가고픈 마음이 상승작용을 하던 차
까투리후배 산우리님이 가이드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나 또한 인터넷으로 설악산을 검색해 보면서
아름다운 공룡능선과 천불동계곡의 비경에 매료되었으나 스스로 체념을 한 상태이고,
내 산행실력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직장 후배들과 지인들은
손사래를 치며 적극 만류를 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인자무적님한테 전화를 하니
고맙게도 책임지고 모시고 가겠단다.
그래! 한번 해보자!
이미 마음을 접고 있던 까투리에게 나의 결심을 알리고,
갈 수 있을 만큼 가 보고 안되면 설악산 관광이나 하자며 갔던 길로 되돌아 올 생각이었다.
일단 마음을 정한 이상 인터넷으로 그곳 날씨를 수시로 검색했다.
(이미 마음은 그곳에 가 있었던 것 같다.)
추운날씨와 강한 바람을 연상하면서 겨울등산복, 등산요령 재숙지,
상비약 추가구입, 걷기운동, 몸상태 점검 등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2007. 10. 20 밤 11시! 드디어 버스에 올랐다.
힘든 산행을 위하여 잠을 재촉하지만 마음대로 안 된다.
눈꺼풀만 살짝 덮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덧 버스가 38선 휴게소에 멈췄다.
세차게 불어대는 차가운 바람에 어설프게 주변을 둘러보니 까만색의 바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철썩이는 파도소리,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들.
몇 해 전 다녀 온 앙코르왓트 밤하늘이 생각난다.
금방 머리 위로 쏟아질 듯했던 주먹덩어리만 하던 무수한 별들.......
추운 날씨만 빼면 거의 흡사하다.
이런 분위기가 마음을 한층 차분하게 만든다.
운영진의 배려로 마련된 따뜻한 국과 밥을 과식하는가 싶었으나
산에 오르려면 남김없이 먹어야 한다고 해서 성공적인 산행을 위해 열심히 먹었다.
새벽4시경 설악동 입구에 도착하여 채비를 갖춘 후
머리에 불을 켜고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상당히 속도를 내서 어둠 속을 헤쳐 나갔다.
주변의 물소리가 귓가를 스치더니 곧바로 가파른 길로 접어들면서 돌길을 걷고 또 걷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숨이 차오른다.
오래전에 읽었던 이태의 소설 ‘남부군’에서 빨치산들의 고뇌와 고통을 상기하며,
까투리에게
“토벌대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하룻밤에 백리를 걸었다는데 우리는 그 보다는 낫지 않아?“
”그래, 맞아!” 하면서 서로 위로를 해본다.
초입에서 마등령까지가 고비라는 이야기를 들은바 있어 힘들지만,
과정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갔다.
정신없이 오르다 보니 얼떨결에 일출의 장관을 놓치고,
동이 트니 주변의 윤곽이 드러난다.
주변을 돌아보니 우리는 역시 변함없는 후미 팀에 속해 있었고
대부분의 회원들이 세찬바람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엄습하는 졸음으로 가파른 오르막길에
체력소모가 심했는지 몽롱하고 힘든 모습이 역력해 보인다.
물로 목을 축이고 약간의 과일을 먹으면서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니,
기대했던 단풍이 없어 조금은 서운했지만 말로만 들었던 우람한 공룡의 형체와
기암절벽의 장관이 서서히 나를 위압하기 시작한다.
몸이 피곤하니 기념사진 촬영도 귀찮아, 앞 팀의 뒤를 쫓으며 재촉한다.
차갑고 세찬 마녀바람은 예상보다 훨씬 강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정말 장난이 아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차갑고 파란 전형적인 높은 가을하늘과
멀리 동해바다까지 보이는 조망은 우리에게 더 없는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걸을수록 숨이 차오르고 다리의 통증은 심해져도
계속 이어지는 공룡 등을 타고 넘으면서
설악산은 금강산 주변에 있는 격이 좀 떨어지는 산이라는
이전의 나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웅대하고 수려한 암릉, 우뚝선 암봉, 온갖 동물 형상의 바위와 괴상한 조각품들, 차곡차곡 쌓인 시루떡,
기기묘묘한 기암절벽, 서로 이어진 봉우리의 군락 집단과
멀리 내려다보이는 울산바위, 공룡능선, 화채능선, 용아능선, 권금성 쪽의 봉우리들,
이 절묘한 형체들은 과연 누구의 걸작품이란 말인가!
모든 형용사를 다 동원해도 부족하리라!
내가 전에 보았던 금강산, 황산, 그리고 유럽의 알프스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비경에 산을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시설을 갖춘다면
세계 어느 곳에 못지 않는 관광지가 되어 국익에 큰 도움을 줄 텐데......
또 ‘외국의 유명산은 바라만 보는 산이지만 우리나라 산은 오르면서
체력과 정신을 단련도 하고 음미를 할 수 있어 즐거움의 강도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들은바 있지만 이번 산행으로 인해 상당히 공감되는 말이다.
하마터면 포기할 뻔 했던 이곳을 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을 뿐 아니라
도저히 이 감격을 주체할 수가 없어 저 멀리 허공을 향해 목청껏 소리쳐 본다.
절규로 바뀐 환성은 이내 불어온 사나운 바람에 순식간에 창공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다...
내가 문장력이 조금만 있더라도 좀 더 아름답고 적절한 표현을 했을텐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계속되는 장관에 흠뻑 빠지면서 식사장소인 신선봉에 도착하여 도시락을 풀었으나,
추운 날씨에 준비한 찰밥이 얼음처럼 차가워 허기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다시 배낭을 꾸려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마침내 공룡능선이 끝나는 지점인 무너미 고개로 넘어서니
도올님이 후미팀의 안전산행을 걱정하면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남은 후미 팀을 기다리는 도올님을 남겨놓고 총총히 발걸음을 옮기니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양폭을 향하는 본격 하산 길로 접어드니 이제까지와는 달리
빨강색, 노랑색, 초록색 물감으로 잘 조화된 수채화가 펼쳐지고,
갈수록 그 경관은 감탄을 자아내는 거대한 예술작품으로 승화되고 있었다.
우렁찬 굉음의 폭포수소리, 양편 깎아지른 절벽에 서로 마주보고
묵묵하게 서있는 오묘하고 장대한 장승과 불상들,
햇빛에 비쳐 찬란하게 빛나는 맑고 투명한 옥류,
분칠을 한 양 하얗고 뽀얀 크고 작은 바위들,
계곡 양편으로 색동병풍을 두른듯한 천불동의 환상적인 비경,
정녕 이곳이 천상(天上)의 계곡이 아니더냐?
장면이 바뀔 때마다 서로 동시에 감탄사를 연발 늘어놓는다.
아!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 정말로 ~~ 아 ~~ 좋다 ~~~
조물주로부터 이런 엄청난 보물단지를 선물로 받은 이 무릉도원에서 우리는 신선이 되어
한참을 절경에 취해 무아지경에 빠져버렸다.
대학 다닐 때(35여년전) 친구들과 이곳을 지나 대청봉에 오른 경험이 있다.
그 때는 왜 이런 아름다운 장관이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을까?
역시 사람은 나이가 들어야 모든 사물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귀면암을 지나 비선대까지 연속적으로 환상적인 장관이 연출되었으나
몸과 다리는 점차 지쳐간다.
주차장 도착시간을 4시 30분으로 잘못 알고 있던 우리 꿩 부부는
뛰다시피 빠른 걸음을 재촉하였다.
비선대와 신흥사를 지나 한참 만에 드디어 버스에 도착하니
슬비님이 반갑게 맞으면서 우리가 20등 안에 들었다고 기적이라고 놀린다.
어려웠던 산행을 무난히 해냈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으로 자리에 기대니
피로가 살며시 밀려온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니 산행하면서 보았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 지나갔다.
얼마나 염원하고, 부러워했던 산행이었던가?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아니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다.
그날의 환희와 희열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나는 아직도 꿈을 꾸듯 도취되어 행복감에 젖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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