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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따로 또 같이]/장끼님 방

정년퇴직 1주년을 맞으며

by 장끼와 까투리 2012. 4. 2.

 

                                     

늘 그렇듯이 이른 새벽에 잠이 깨면 최우선으로 신문을 펼쳐보면서 하루 일과는 시작된다.

평소처럼 무심하게 신문 맨 위 날짜를 보다가 오늘이 바로 1년 전에 직장에서의 마지막 근무하던 날임을 깨달았다.

쏜살같은 시간의 속도를 실감하며 잠시 그 당시 생각에 잠겨본다.

퇴직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직장 업무를 마무리하며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에 들어선 나는,

약 12년 가까운 기간 동안의 직장 생활이 나의 인생에서 어떻게 조명되고 의미를 부여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우선 직장이라 함은 지속적인 경제활동의 터전으로 행복한 가정 조성과 가족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절대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조합으로의 재취업은 경제적으로 다소 부족했을지라도 계획을 세워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했고, 개인적으로도 크게 방황하지 않고 별다른 굴곡 없이 지낼 수 있게 했다.

사업으로 방향 설정을 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을 뿐 아니라 지금도 아찔한 생각이 든다.

재취업 당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불편한 환경 속에서도(일 년 후엔 이사를 해서 함께 지냈다.)

제2의 직장에 대한 애착심과 주인의식으로 정년퇴직이라는 유종의 미를 거둔데 대해 나 자신과

더불어 가족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은행에서 퇴직한 동료들의 현 상황을 보면 사업에 성공하여 기반이 완전히 잡힌 사람도 있지만 소규모 자영업으로

겨우 현상유지를 하고 있거나 그나마 여러 번의 실패 후 많은 손실을 입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저임금의 계약직으로 불안정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더욱이 스스로 세상을 하직한 경우와

소식이 두절된 상태등 대부분 그 전에 비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은 모습들이다.

그동안 온실 같은 직장에서 반 강제 퇴직을 한 후 혼탁하고 살벌한 세상으로 뛰어들면서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자녀들 학비며 결혼비용, 원만한 가정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더우기 앞으로 다가올

긴 노후생활까지 생각이 미치면 가장으로서의 어깨는 한없이 무거웠으리라~~~.

복지제도가 잘 발달된 서방국가와는 달리 당시 우리나라는 갑작스러운 직장의 변동이 발생한 경우에

순식간에 빈곤층으로 바뀌는 구조를 갖고 있다

 

 

입사해 보니 전 직장에 비해 규모도 매우 작았고 조합원들의 사업부진과 단체조합 특유의 풍조로

직원들이 저임금과 업무 현장의 낙후로 사기가 저하되어 있었다.

또한 조합 내부의 출납사고 및 허술한 관리로 조합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있었고 자산 과 수익의 감소,

출자금 인출 등으로 존립마저 위태로워 향후 수년을 장담하기 힘들었었다.

타 신협 역시 IMF여파에 따른 파산과 금융사고 등으로 얼룩져 책임자들의 정상적인 퇴임이

최근까지도 거의 없는 상태임을 감안하면 자산 증가 등의 성장을 이루지 못한 미흡한 부분은 있었지만

내부통제와 질적 성장 및 단체조합으로의 기능수행은 차질 없이 수행되었다고 판단된다.

 

 

재임기간 노고에 대한 고마움과 아쉬움을 표하는 임직원과 조합원의 박수를 받으며 퇴임인사를 마치니

나 자신 보람되고 뿌듯했다.

큰 조직에 비해 유지관리 및 운영과 리스크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혼자 감당해야 하고

외로운 고심을 해야 하는 책임자의 고충을 생각하면 대부분 무난하게 정년퇴임하는 교직원이나 공무원과는

가치 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급여 및 경제적인 면에서는 전에 근무했던 은행에 비하여 한참 미치지 못했지만 시간적인 여유와 더불어

정신적으로는 훨씬 자유로웠다.

틈틈이 여러 번의 해외여행으로 넓은 세상으로의 시야를 확대했고, 산악회에 가입하여

국내 유명산은 거의 다녔을 정도로 산에 심취되어 자연과의 교감과 심신 단련을 하고 있으며,

또 평소 관심이 있었던 국악기인 단소와 대금을 배울 기회가 있어  지금까지 취미활동에 탐닉하고 있다.

가정적으로는 딸이 결혼을 해 손자를 보았고 아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 대기업에 다니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재취업 후에 내게 주어진 조건은 미약했지만 인생에서 존재의 참의미를 알려 주었고,

새로운 세계의 발견과 진입으로 삶의 짙은 내음과 더불어 충전된 에너지는 앞으로의 내 여생에

활력소와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내 옆의 동반자가 항상 함께 했으므로 가능했으며 이로 인해 주변으로부터 많은 부러움도 받았다.

요컨대  지난 10여년의 지천명(50대 나이)을 보내면서 인생의 의미와 철학에 대하여 많은 것을 음미할 수 있었고,

삶의 질에 있어서도 지나온 그 어느 시절보다 좋았다고 자평하고 있으며 나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경제활동 외에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으나

나이 들어 퇴직한 후에는 확연히 달라지며 선택의 구간이 한없이 넓어진다.

퇴직 전부터 주변의 지인들이나 조기 퇴직한 학교 동창생들로부터 퇴직 후 길어진 하루 중 상당 시간을 TV를 보거나

가끔은 운동이나 산을 다니며 무료하게 보낸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의학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수명도 점차 늘어나 백세 노인들을 흔히 볼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함을 예상할 때

예전의 방식으로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운 나날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개인의 건강과 경제적인 여유가 가장 큰 관건이겠지만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람되고

가치 있게 보낼 것인가도 커다란 과제다.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자” 란 말은 아주 단순하고 흔한 말이지만 나의 신조가 되었다.

오늘 하루는 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를 이어 주는 중요한 순간이고  연결고리로서 충실하고 보람이 있어야만 한다.

최선을 다 하기 위해서는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자신이 선택한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하고

반드시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나는 이미 제 2의 인생을 출발하였고 구체적인 설계와 함께 실천을 진행 중이며

후회 없는 미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 2005년 방문한 금강산 명소 상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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