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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된 시인들

너무 아름다운 병 --- 함성호

by 장끼와 까투리 2010. 2. 19.

 

너무 아름다운 병

함성호


아프니?
안녕 눈동자여, 은빛 그림자여, 사연이여
병이 깊구나
얼마나 오랫동안 속으로 노래를 불러
네가 없는 허무를 메웠던지
그런,
너의 병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지
어떤 무늬인지 읽지 않았으니
아무 마음 일어날 줄 모르는데
얼마나 많은 호흡들이 숨죽이고 있는지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는 압력

휘청, 발목이 잘려나간 것처럼
한없이 무너지고 싶다
밥 먹어,
너의 아름다운 병도 밥을 먹어야지
별다방 아가씨가 배달 스쿠터를 타고
전화번호가 적힌 깃발을 휘날리며 지나간다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참혹한 욕망이 문지방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돌아가자
너의 아름다운 병을
검은 아스팔트까지 바래다 주러 간다
가면, 오래 오래 흐린 강 마을에서
집의 창을 만지는 먼지들과 살 너와
돌아서면 까맣게 잊고
이미 죽은 나무에 물을 뿌릴 나는
저리위- 독주에 취해 더 깊은 병을 볼 거면서

먼 길로,
일부러 먼 길로
너의 아름다운 병을
오래 오래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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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꽃이 피었다가 소리 소문없이 지듯
꽃 진 자리를 지나 온 새벽강물이 낮은 쪽으로
풍경소리를 내려놓듯
어느날 갑자기 다가왔다가
홀연이 사라지는 게 사랑의 속성이다
다가서면 그 만큼 멀어지고
만나면 헤어지는 게 또한 인연이다
그것이 세상 만물의 이치이거늘, 어찌하겠는가

그리움이란 병,
사랑이라는 병,
그 불치의 병명 때문에
사람들은 늘 치명적이다. [양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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