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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된 시인들

배꼽 --- 안도현

by 장끼와 까투리 2010. 2. 25.

배 꼽

 

안도현

 

 

도대체 배꼽을 왜 뱃가죽에 붙들어 매어둔단 말인가?

그 환한 이마에 턱 붙여놓으면 안 되나?

그 부지런한 손등에 좀 붙여놓으면 안 되나?

 

어릴 적에 나는 배꼽 속에 아기염소를 묶어

오랫동안 사육하는 노인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배꼽 둘레를 따라 염소가 뱅뱅 돌던 자리

꼬질꼬질한 주름이 자글자글했으니까

 

내 조국은 이십대의 배꼽을 가리려고 군복을 입혔고

나는 제일 늦게 마르는 습지의 울먹이던 웅덩이를 갑으로 메웠다

그러다가 꽃에도 배꼽이 있나, 살펴보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몸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배꼽처럼 살았다

 

오늘 신원 마을 모정<茅亭>에 드러누워

배꼽으로 달려드는 파리를 휘휘 쫓다가 알았다

내가 배꼽을 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배꼽 끝에 달린 마대자루가 바로 나였다

 

 

언제까지 배꼽을 파먹으려 삶을 영위할 것인가?

그러니 부디 배꼽을 풀어주자, 배꼽을 풀어주자

 

 

-<시인세계> 2009.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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