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꼽
안도현
도대체 배꼽을 왜 뱃가죽에 붙들어 매어둔단 말인가?
그 환한 이마에 턱 붙여놓으면 안 되나?
그 부지런한 손등에 좀 붙여놓으면 안 되나?
어릴 적에 나는 배꼽 속에 아기염소를 묶어
오랫동안 사육하는 노인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배꼽 둘레를 따라 염소가 뱅뱅 돌던 자리
꼬질꼬질한 주름이 자글자글했으니까
내 조국은 이십대의 배꼽을 가리려고 군복을 입혔고
나는 제일 늦게 마르는 습지의 울먹이던 웅덩이를 갑으로 메웠다
그러다가 꽃에도 배꼽이 있나, 살펴보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몸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배꼽처럼 살았다
오늘 신원 마을 모정<茅亭>에 드러누워
배꼽으로 달려드는 파리를 휘휘 쫓다가 알았다
내가 배꼽을 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배꼽 끝에 달린 마대자루가 바로 나였다
언제까지 배꼽을 파먹으려 삶을 영위할 것인가?
그러니 부디 배꼽을 풀어주자, 배꼽을 풀어주자
-<시인세계> 2009. 겨울호
'인연이 된 시인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수영의 낙타과음 전문 (0) | 2010.09.06 |
---|---|
낙타 --- 신경림 / 순리대로 사는 무욕의 삶을 꿈꾸다... (0) | 2010.06.21 |
바람의 말 --- 마종기 (0) | 2010.04.21 |
[스크랩] 우리가 어느 별에서...정호승시 / 노래..안치환 (0) | 2010.03.16 |
[스크랩] 김수영, 「낙타과음(駱駝過飮)」 중에서 (낭독 장인호) (0) | 2010.02.20 |
너무 아름다운 병 --- 함성호 (0) | 2010.02.19 |
[스크랩] 꽃 - 기형도 (0) | 2010.02.18 |
[스크랩] 덕유산에서... 길손님, 번개님, 맑은바다님, 허부적님의 덕유산 사진. (0) | 2010.01.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