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것 저 것
산내음 가시나무님 글과 심술쟁이님 사진.
장끼와 까투리
2010. 3. 11. 13:18
입춘 지나서 내리는 눈
가시나무 정정숙
입춘 지난지가 한참인데요.
잠결에 누가 온 듯싶었는데요.
창이 버언하게 안개등을 켜고
눈이 오네요.
아무 조짐도 없더니
못 다 한 이야기 풀어놓듯
사락사락 끝도 없이 내리네요.
하얀 옥양목 이불 같은 눈이
초라한 이들이 누운 지붕을 다독여줍니다.
고달픈 발자욱이 잠든 골목길도 차근차근
빈 데 하나 없이 여며 줍니다.
간간히 바람이나 눈길에 나서는 밤
건너 산이 그 눈을 다 맞고 섰습니다.
나도 그냥 잠들 수 없어 생각에 묻힙니다.
철없던 그때 제풀에 지쳐
돌아온 자식 이부자리 펴주고
말없이 방문 나서는 당신 뒷모습 같이
아무 생각 하지 말고 푹 쉬기나 하라고
속으로 지껄이던 당신 눈빛같이
눈이. 눈이. 오시는군요.
아, 그 눈길을,
팔십 리 길을,
그 쓸쓸한 길을
되짚어 소리 없이 다녀가신
무명 적삼의 당신
후기: 몇 몇 해 전에도 입춘지나 엄청나게 눈이 왔드랬어요.
한 밤에 깨어 내리는 눈을 따라 걸어본 자죽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