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된 시인들
배꼽 --- 안도현
장끼와 까투리
2010. 2. 25. 09:58
배 꼽
안도현
도대체 배꼽을 왜 뱃가죽에 붙들어 매어둔단 말인가?
그 환한 이마에 턱 붙여놓으면 안 되나?
그 부지런한 손등에 좀 붙여놓으면 안 되나?
어릴 적에 나는 배꼽 속에 아기염소를 묶어
오랫동안 사육하는 노인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배꼽 둘레를 따라 염소가 뱅뱅 돌던 자리
꼬질꼬질한 주름이 자글자글했으니까
내 조국은 이십대의 배꼽을 가리려고 군복을 입혔고
나는 제일 늦게 마르는 습지의 울먹이던 웅덩이를 갑으로 메웠다
그러다가 꽃에도 배꼽이 있나, 살펴보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몸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배꼽처럼 살았다
오늘 신원 마을 모정<茅亭>에 드러누워
배꼽으로 달려드는 파리를 휘휘 쫓다가 알았다
내가 배꼽을 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배꼽 끝에 달린 마대자루가 바로 나였다
언제까지 배꼽을 파먹으려 삶을 영위할 것인가?
그러니 부디 배꼽을 풀어주자, 배꼽을 풀어주자
-<시인세계> 2009. 겨울호